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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Apr 04. 2024

동생 우절이가요

[오늘도 나이쓰] 28

3월 마지막날 일요일에는 일찍 저녁을 먹고, 8시가 조금 넘어 누웠다. 4월 첫날 새벽. 나을 듯 말 듯한 감기가 건조한 코로 가릉거리는 목구멍으로 남아 있었지만 몸은 가뿐하게 일어났다. 본격적으로 새벽에 일어나 읽고 쓴 게 2년 남짓. 여느 날 새벽처럼 양치를 하고 찻물을 끓였다. 먼저 찻물에 뜨거운 물을 3분의 2 정도 섞어 마셨다. 몇 번에 나눠 마셔야 할 정도의 뜨거운 상태로.  


순간 멀미감이 갑자기 밀려왔다. 서 있는 데 어질 했다. 그냥 주저앉고 싶을 정도였다.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증상이었다.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심호흡을 했다. 양다리를 쭈욱 뻗어 책상 위에 걸치고. 앉아서 반컵 남은 보이차를 마셨다. 새벽 공기가 담겼는지 그새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그 물이 속으로 들어가니 더 몸이 가라앉았다. 눕고 싶어 온돌 침대에 엎드렸다. 안방에 불을 켜 놓은 채.


타닥이가 침대 밑에서 올려다본다. 얼마나 엎드렸었는지 알람이 울렸다. 5시에 한번 5시에 반에 한번. 벌렁거리던 속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질한 증상도 사라졌다. 이유가 뭘까 궁금해하면서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고, 아침 운동을 25분 정도 했다. 매번 혼자였던 헬스장은 불이 켜져 있었다. 4월부터 처음 나오신다는 어르신이 한분 계셨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와 출근 준비를 마치고, 10분 남짓 운전을 해 아내를 내려주고 다시 달리는 30분 내내 몸은 괜찮았다. 다시 한번 오늘 새벽에 갑자기 왜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유를 모르겠다. 새벽 멀미감은 공복인 배에 다량(?)의 카페인이 있는 보이차를 마신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저녁에 먹고 잔 음식물 때문일까. 


늦게 먹지도 바로 눕지도 않았다. 속이 더부룩하거나, 복통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이유가 여전히 궁금하긴 하다. 약간은 가볍지 않은 몸으로, 상태로 아침 조례를 준비했다. 그러다 '아, 오늘이 4월 1일, 만우절이구나'.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면서, 교실 앞 문을 열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녀석들을 놀려 줘야겠군. 표정들을 보면서 마음의 컨디션도 좀 올려봐야겠군' 하고. 


고3이어서 표정 먼저 주눅 들어 있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자주 그런다. 억지로라도 웃자, 웃자, 웃자 하면서. 네모난 세상 우리끼리라도 동글동글하게 지내자, 하면서. 원래 하듯이 자연스레 앞 문을 열고 들어 갔다. ㅅ, ㅈ이 빼고 다 와서 앉아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양쪽 어깨에 초록 견장 같은 무늬가 있는 체육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단정하고, 봄꽃처럼 화사하게 느껴졌다. 


'얘들아~ 좋은 아침. 굿모닝~ 월요일이다. 날씨 참 좋지?.' '네'하며 대답하는 몇몇 아이들 표정 위로 햇살이 튕겨 올라간다. 푸석하지만 옅은 미소가 해맑다. '얘들아, 오늘 단축이래. 점심만 먹고 일찍 하교한다.' '와~'하는 아이들의 환호성에 복도 끝에 있는 우리 반이 단박에 반대쪽 복도 끝으로 달려갈 듯하다. 아이들 환호성 사이로 ㅅ이 목례를 하면서 들어왔다. 


진짜?, 왜 그래?, 오늘 무슨 날 이래? 하면서 소곤거리는 아이들 사이로 나는 입을 앙 다물고 버티고 있었다. 5분 정도 뒤면 아이들은 1교시 교실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 분위기 좋은(?)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어, 오늘 만우절 기념으로 그렇게 한다네~'


그제야 몇몇 아이들의 눈빛이 '뭐야'하는 원망으로 바뀐다. 영문을 모르는 헤드셋 청년 ㅈ이 때마침 뒷문으로 들어오면서 소리 없이 인사를 던진다. 그러는 동안 마음껏 올라갔던 아이들의 입꼬리도 다시 제자리로 내려온다. 몇몇은 아예 밑으로 삐죽거리면서 처진다. 그렇게 조회가 끝나고 아이들이 하나 둘 다른 교실로 이동한다. 다른 반 아이들도 우리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나도 1교시 수업을 위해 나서려는데 아이들 사이를 지그재그로 피하듯 벼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러더니 이내 큰 키를 구부정 숙이더니 내 귀에다 대고 소곤거린다. 표정이 너무나 또렷하게 진지해서 무슨 일 있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랬다. 


'선생님, 저 자퇴하고 싶습니다'


순간, 당황했다. 평소 장난기 없고 글을 쓰면서 자기 성찰을 하며 여전히 진로 탐색중이다. 표정이나 목소리가 더욱 진지했다. 3월 초 첫 번째 메일에다 자신이 지금까지 쓴 짧은 시와 글을 여러 개 첨부해 보냈었다. 관념적이고 감상적인 글들 속에서 어리지만 복잡한 심정,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의지, 자신을 포함한 대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려는 다짐이 느껴졌다. 그중 제목을 달아 놓은 유일한 글이다. 



밑동


크게 쏟아 오를 땐 몰랐다

언젠가 저버릴 잎의 큰 복들을

그저 다 떨어지길 지켜볼 뿐

잎은 다 떨어져 나가도

뿌리는 깊이 땅속에 박혀

잊지 못할 추억으로 오늘도 살아간다



한 가지만 강요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며 좀 더 일찍 제 하고픈 일을 찾으려나 보다, 싶었다. 꽤나 오래 전 그렇게 학교를 떠난 한 아이가 불현듯 떠올랐다. 십몇년전을 더듬느라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표정 관리도 되지 않았다. 그런 내 앞에서 벼리는 여전히 어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스쳐 가는 아이들을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오늘 낮에 비는 시간에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보자'라고 살짝 귀띔을 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되물었다. '갑작스럽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라고. 그랬더니 여리가 눈동자마저 촉촉해진 채 나를 또렷하게 쳐다보며 그런다. 말을 꺼내기 전에 콧구멍도 벌렁거린다. 그러면서 힘겹게 파래진듯한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사실은 집에 좀 일이 생겼습니다. 주말에 제 동생한테요. 제 동생 이름이 우절인데요~ 오늘 동생이'라고.


그 순간, 아 이런! 했다. 사람 이름이 참 특이하네 하는 순간에 말이다. 내 얼굴(반응)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벼리가 그제야 희죽거렸다. 


'너 이 찌끼. 만우절이라 그러는 거지? 그치, 맞지?' 

'네, 샘. 하하하하하하하'


참을 수 없었다. 3분 정도의 시간 동안 진지했고, 걱정했고, 당황했고, 제지할 해결 방안을 머릿속에 떠올리느라. 새벽의 헛기운이 다시 도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한 손으로 교탁을 잡고 오른손으로 키 큰 벼리를 위에서부터 구겨 넣어 헤드락을 걸었다. '아오~ 야, 넌. 글 쓰지 말고 연기해라. 연기'


별게 진 얼굴이 나를 진지하게 만들고, 긴장하게 만든 것에 대한 흐뭇함인지 헤드락을 하면서 속으로 크게 크게 외쳤다. '아, 오늘이 만우절이라서 다행이네. 다행이야'. 늦게 교실을 나가는 우리 반 아이들이 눈으로 묻는 듯했다. '어? 왜 그러세요?'. 


1교시 수업 준비를 하러 교무실로 올라오는 동안 몸이 한결 편안해져 있는 걸 느꼈다. 가슴은 봄바람이 스치는 듯 살랑거렸다. 정말 다행이다. 요즘 아이들도 만우절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날이 만우절이라서. 성질 급한 개나리 같은 벼리의 말이 하얀 거짓말이라서. 끝까지 같이 갈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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