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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y 05. 2024

아무 일 없는 날을 만끽하려면...

[오늘도 나는 감탄寫] 24

5월 5일입니다. 일기예보대로 비가 옵니다. 어제, 그제 28도, 29도를 오르내리더니 올해 어린이날을 단박에 선선한 가을의 어느 날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욕구가 좌절되어 울상이 된 어린이들이 많을 것 같아요. 대체재를 찾아내 어린이들의 욕구가 끝내 좌절되지 않도록 채워줘야 하는 어른들이 더 바빠질 것 같은 날입니다.  


남매들이 '어린'이를 조금씩 벗어나면서 이 날이 되면 자주 느끼게 됩니다. 부모라는 이름만으로 위대한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크고 작은 날씨를 극복하면서 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날씨를 '극복'했다고 쓰지만 욕구를(가) 적절하게 조절했(되었)다고 읽힙니다.  


인간의 정신은 이성, 기개, 욕구로 이루어진다고 한 플라톤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죠. (대부분의) 부모는 어떠한 날씨 환경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기개를 펼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부모 자신의 욕구와 이성을 잃은 (아)이들의 넘쳐나는 그것까지 적절하게 거의 다 충족시켜 줍니다. 


참, 신비한 일입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기회조차 없었던 역할 경험인데 말입니다. 부모 역할을 해보지 못한 플라톤이 보더라도 분명히 부모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이미 그가 이야기 한 '훌륭한'사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모 역할이 더욱 놀라운 점은 부모 자신들이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 욕구를 조절하고, 자제하고, 양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이지요. 


우리는 일상에서 폭염도 한파도 겪고, 태풍이 휘몰아칩니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날수를 따져보면 그런 날씨의 극값은 몇 번 되질 않습니다. 한 해만 봐도 365일 중에 폭염, 한파, 태풍을 다 합쳐도 평균 30일이 되질 않아요. 통계적으로도. 


오히려 우리의 일상을 채우는 대부분은 조금 벌어진 틈처럼 살짝 차이나는 온도 차 정도이지요. 선호하는 에어컨이나 히터의 온도 차이, 걷는 속도 차이, 시선이 머무는 정도 차이, 타이밍 차이, 관심과 욕망의 대상 차이에서 오는 마음과 정신의 온도 차이처럼 말이지요. 


이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진 하루가 더 많지요. 마치 우리의 삶에 웃음과 울음이 혼재하지만, 대부분은 크게 웃지도 계속해서 울기만 하지도 않는 '권태로울 정도로 아무 일 없는' 오늘로 가득 채워지듯 말입니다. 


아무 일 없는, 어제와 같이 밋밋한 오늘 안에서 '마냥' 행복하게 사는 말고, '가끔' 사는 것, 오늘 하루 중 '몇 시간' 보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그 연습을 통해 날씨의 극값에서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고 버텨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연습은 말이죠. 날씨를 예보하듯 각자의 욕구를 예보해 보는 겁니다. 방법적으로는 별거 아니죠. 쪽지로, 톡으로, 말로, 글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메일 등으로 미리 표현해 보는 겁니다. 세 살 막내도, 서른여덟 아빠도, 육십 다섯 할머니도 말이지요. 


(거의) 언제나 즉흥적인 욕구가 문제이니까요. 그런 욕구들이 충돌할 위험성이 큰 거니까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욕구가 예보된다면 비 예보에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서듯 미리 시간을 있지요. 생각을 정리할 있고, 욕구 조절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죠. 상황에 맞게, 상대에 맞게. 


무엇보다 욕구 예보제의 가장 이점은 어릴 적부터 일찍, 자주 상대방과의 자기 욕구 조절과 충족을 위한 관계 연습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강압으로 충족되는 욕구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능력이 길러져야 아무 없는 날을 만끽할 수 있어집니다. 그렇게 되어야 가진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자기 삶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기와 연결된 관계를 말랑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사회성은 어쩌면 덤으로 부여되는 천성일지도 모릅니다.  


감추려 했던 자기 안의 문제가 외부로 투사된 것이 적이라고 지젝은 말합니다. 어딜 가든 자신과 갈등을 빚는 누군가가 생겨난다면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받아 들어야 한다는 충고를 곁들이면서 말이죠. 저는 이 말이 아무 일 도 없는 날을 많이 만들려면 나의 욕구를 내가 먼저 읽어 내고 적절한 방식으로 미리 표현하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거야,라고 읽히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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