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Tea Apr 28. 2024

오늘도 명랑해지는 방법

[오늘도 나는 감탄寫] 23

3월이 엊그제 같더니 4월이 다 지나갑니다. 3월, 4월, 5월이 봄이라면 올해 봄도 벌써 3분의 2가 다 지나가나 보네요. 반팔에 반바지까지 꺼내 입은 이들이 보이는 걸 보니, 기온에 덥혀진 마음들은 이미 뜨거움을 준비해야 할 때인가 봅니다. 


짧아진 옷들을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아내가 짧은 옷들과 긴 옷들의 자리를 수북이 맞바꾸는 걸 보면서 생각이 듭니다. '하루', '오늘'과 '인생 전체'는 마치 옷 같다고요. 발가벗고 태어난 우리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언제나 옷을 입잖아요. 길이도, 두께도, 색상도 관계없이요.  


그런 옷들을 입고 하늘을 자주 올려다봐요. 내 눈에 들어온 하늘에 구름이 가득해요. 그런데 한쪽에서 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여요. 파란 하늘이 더 펼쳐질까요, 구름이 그마저도 가려 버릴까요 싶어 져요. 그러다 보통은 잊어버려요. 대부분은 뒷목이 뻑뻑해질 때까지 하늘만 올려다보고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바쁘니까요.  


그러다 맞다, 하고 다시 정신 차리고 올려다보면? 아무 일도 없지만, 재미도 없는 날이 있지요. 그냥 기운이 빠지고, 울적해지기까지 하는 그런 말이에요. 반대로, 별 일 아니지만 기분이 명랑해지는 날도 있고요. 그냥 같은 길을 걷는데도 다리에 괜히 힘이 들어가고, 마음이 기분 좋게 뭉클거리는 날들 말입니다. 


한 날, 5층에만 있다가 1층에 오랜만에 내려갔습니다. 스물 일곱해를 같이 근무하고 있는 허쌤을 보러요. 약속한 시간에 문을 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있으면서 고등학생이었던 은둔형 아들과 3년 가까이 벽을 쌓고 살 때조차도 전혀 티 내지 않고 오히려 더 명랑했던, 절대 동안의 두 살 형입니다.


허쌤은 참 편안한 옷 같아요. 어느 날, 어떤 때에도 저의 자그마한 파란 하늘이 훅훅 넓어져 금방이라도 구름이 걷힐 듯 만들어 줄 것 같은 사람이에요. 불쾌한 상황을 유쾌하게 승화시키는 재주가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언제 봐도 걱정하나 없어 보이는 개구쟁이 같아요. 그럴 리가 없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그날, 1층 교무실을 들어 선 순간에도 눈과 입은 벌써 동시에 나를 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어찌, 높은 곳에서 잘 사셔? 얼굴 보기가 어렵네.' 나도 같이 얼굴 근육을 화하게 풀면서 인사를 나누는 시선 사이로 오른쪽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티백 봉지가 들어찼습니다.


푸하하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투명한 비닐봉지 위에 붙은 라벨에 이렇게 쓰여 있네요. '이게 무슨 상황이고'. 상황차랍니다. 늘 이런 식입니다. 차 하나를 사더라도 이런 걸 골라 사는 듯합니다. 그래서 하루의 아픔 속에서도, 지금의 어둠 속에서도 잘 살아내나 봅니다. 가벼워 보이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웃음, 웃음하면서 말이에요.    


저는 정말로 웃기면 눈물이 납니다. 눈물샘이 막혀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열아홉 우리 따님을 보면요. 웃을때 눈물이 철철 흐르는 것도 닮는가 봅니다. 아내와 같이 웃다 보면 셋다 눈물을 닦느라 정신이 없을 때가 많은 걸 보면요. 그러면서 생각해요. 허쌤을 보면요, 한번 덜 웃는 게, 또 하루인 '오늘' 하루를 채우는데 얼마나 손해인지 모르겠다 싶어 집니다. 


그건 옷만 살짝 뒤집어 봐도 보여요. 우리가 주야장천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보이는 면보다는 보이지 않는 면에 더 신경을 쓴 게 튼튼하고, 질 좋은 옷이잖아요. 잠깐 옷을 뒤집어 보면요. 일정한 간격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내린 경쾌한 바느질이 조각조각난 천들을 요리 저리 잘 연결해서 편안하고, 성능 좋고, 예쁘기까지 한 옷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풀리지 않은 채 말입니다. 


옷마저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잖아요. 늘 입던 옷이지만, 오래 입어 싫증 나는 옷이지만, 새로울 게 없는 옷이지만, '오늘' 입으면 특별한 날이 될 수 있는 그런 애착 옷 말이에요. 특별할 것 없는데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옷이에요. 


그런데 옷을 뒤집어 입고 다닐 수도 없고, 허쌤(같은 이들)과 항상 동행(?)할 수는 없지요. 그래서 한참 전부터 제가 혼자 정한 방법이 하나 있어요. 다운된 기분을 올려주고, 그냥 명랑해져서 빼곰한 파란 하늘을 넓게 넓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입니다. 꽤나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이에요.  


몇해전부터 거의 모든 옷들을 조심씩, 조금씩 정리해서 (거의) 기부를 했습니다. 짧은 것, 긴 것, 한겨울 것 해서 몇벌씩만 남겨두었어요. 오래되었지만 튼튼하고, 단단하고, 입으면 편안해 지는 옷들로만. 아니 편안해지려고 입으려는 옷들만. (내가 정한)그 옷을 입는 날은 이유없이 용서하고, 배려하고, 다정하고, 친절하고, 한번 더 웃자고 스스로 다짐한 옷들로만.  


옷은 언제나 '오늘' 필요한 거잖아요. 그렇게 오늘, 오늘이 이어져 봄이 지나고, 올해가 지나고, 내가 나를 밀고 나가는 거잖아요. 그렇게 여기까지 잘 온거잖아요. 기분 좋게 나를 옮아 맨 바느질로 나의 온 몸을 감싸고. 촘촘하고, 경쾌하게 그리고 이왕이면 명랑하게. 그러다 보면 은유 작가님의 말처럼 오늘도 '한번 해볼 만한' 그런 날이 되지 않을까요?   



언제부턴가 이렇게 생각해요. 글 한 편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잘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요. 글 한 편을 잘 쓰더라도 글 쓴답시고 하루가 엉망이 되면, 그게 또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무엇을 위한 글인가, 회의가 들고요. 잘 살려고 쓰는 건데 쓰다가 잘 살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안 되잖아요. 저한테 '잘 사는 일'은 하루를 잘 보내는 일입니다. '인생'을 잘 사는 건 어려운데 '하루'를 잘 보내는 건 해볼 만하죠. 

_<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중에서

이전 22화 비웃지 말고 넉넉하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