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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l 17. 2024

#예쓰겠습니다

[오늘도 나이쓰] 46

지금은 이전보다는 쉽게 개명을 할 수는 있다고는 하지만 한번 불리기 시작한 호칭이나 명칭을 바꾸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절차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랜 관계에서 자리 잡힌 서로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몇십 년을 기린으로 불리고 부르다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사자처럼 살아야 하는 꼴이 되니까요. 

 

오십여 년 전. 운명적으로 만난 우리 순자 씨가 자부심을 갖는 이름. 산과 산이 높게 겹쳐 있는 산골에서 지금 아드님과 같은 갓 스물 하나의 나이에 저를 낳은 우리 순자 씨에게는 제가 선생이 될 것을 짐작이라도 한 듯 벼슬을 이루다'라고 지었답니다.             


그런데 제 이름은 공식적으로 불릴 때는 어감이 좀 그렇습니다. 아주 공손한 분들이 전화상으로, 제 앞에서 또박또박 다시 한번 좀 그런 그 어감을 확인해 줍니다. 그때마다 저는 '관 짜는' 사람이 됩니다. "네? 성짜 광짜시라구요?" "아니요. 성. 관이요" "아, 네. 네. 윤, 성짜, 관짜 시라고요!". '뭐 하라고? 관을 짜라고?'.        

   

또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 아들 딸인 그분들은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느낌으로 하는 거니까 뭐 어쩔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화 끝에 흠흠 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헛기침을 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순자 씨의 미래의 혜안을 부인하는 것 같아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어 오늘도 '관을 짜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이 봤을 때 소위 문과 선생인 제가 이과 학생들 서른둘을 데리고 시립과학관에 실험 실습을 하러 말이죠. 오늘, 내일까지 이어지는 3일짜리 특별 프로그램중 첫날이었습니다. 물벼룩 화학적 조절, 식품 속 염분량 분석, 암석 조직 관찰, 슐리렌 장치로 기체의 흐름 살펴보기 의 네 가지 실험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신이 더 선호하는 한 가지 주제를 선택해서 참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참여했던 아이들은 우리 반인 벼리, 여리, 곰이, 한국지리 수업을 듣는 둥이, 희야 정도의 네댓 명을 빼고는 저를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이 저를 계속 '예쌤~', '예쌤~'이라고 부르더군요. 물었습니다. 그렇게 부르냐고. 그랬더니 우리 반 아이들의 친구들, 친구들의 친구들 덕분(?)이라고 하더군요. 


네. 제가 우리 반에서 아침, 저녁 조례와 종례 때 아이들과 박수를 치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같이 외치는 인사말이었습니다. '예쓰겠습니다'. 항상 예스 yes의 마음으로 매사에 애써보자는 의미로 지어 낸 말입니다. 데면 데면 하는 요즘 아이들이지만 설명하면, 당부하면, 꼼꼼히 가르치면 잘합니다. 


자신이 고3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3월은 물론 4월까지도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조차도 하루, 하루를 채우는 걸 힘들어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예쓰겠습니다'를 외쳐요. 그러면서 반복해서 강조하죠. 이 인사를 몇 번을 하면, 졸업이야 라고요. 그러면 눈빛이 조금은 힘이 들어가요. 


우리가 그런 것처럼  열아홉들도 예쓰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세상 속에는 수많은 졸업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토록 바라지만 잘 오지 않는 졸업식도 있고, 그 반대의 졸업식도 많다는 것을. 그러다 결국 우리 삶의 졸업식은 오직 단 한 번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너무 애쓰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대장내시경 실험입니다. 두 그룹으로 나뉜 차이는 내시경 검사 이후에 있습니다. 한 그룹은 대장내시경 검사 후 바로 내시경 호스를 제거합니다. 다른 그룹은 5분 정도 있다가 제거합니다. 


그런 후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다음에도 이런 방식의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을 의향이 있느냐고? 결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5분 정도 있다가 제거한 그룹이 바로 제거한 그룹보다 2배가 넘게 긍정적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어디서 오는 차이일까요?  열아홉들한테도 같은 질문을 합니다.          


어른들에 의해서, 시스템에 의해서 나뉜 문과, 이과.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무의미합니다. 아니요. 오히려 더 서로를 취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비난을 넘어 힐난하고 증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다행입니다. 늦었지만 더 늦지 않게 뚜렷한 구분을 없애려는 제도적인 출발이 시작된 게 말입니다. 


사자와 기린은 분명히 다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같죠. 우리처럼 아이들도 다 다르지만 또한 많이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적으로, 사람답게 언제나 자신이 지금 밟고 있는 하나의 과정의 끝을 잘 마무리하는 연습을 충분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이라는 연습장에 충분히. 

    

연습이란 실패를 전제로 합니다. 연습 그 자체가 어른이 되고 나면 잘 안되죠. 시간이 없다고 안되고, 마음을 담을 여유가 없다고 안됩니다. 너저분하게 바쁜 사람이 어른들이니까요. 열아홉 무렵부터 연습이 안되거나, 덜되면 꽤나 더 너저분하게 바빠지니까요.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도 글을 쓰고, 말을 잘하는 아이들도 다 사람답게,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잖아요. 모든 것을 숫자나 공식으로 표현하려고 해도, 항상 근거 없이 애매모호하게 긴가민가해도 시시각각으로 인문학적 감성, 근거 있는 냉철한 판단력이 어쩔 수 없이 너저분한 어른으로 살아더라도 다 필요한 거잖아요. 


그 접점에 자신에 대한, 서로에 대한 예쓰는 마음이 필요한 이유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어서 오늘도 아이들과 박수를 치며 인사를 나눕니다. '얘들아! 오늘도 우리~ 예쓰자'!고. 이틀째인 오늘. 그래서 제가 준비한 강의 주제가 '예쓰는 마음으로 자신을 지구를 구해내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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