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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Feb 24. 2023

우연히 만난 감태

지난 주말. 돌림병 이후 18일 만에 커피 맛을 느낀 날이다. 누구도 묻지 않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나에게는 기부니가 그냥 좋아진 날. 다행히 같은 날 확진이 되었던 아내는 나 보다 며칠 일찍 입맛이 돌고 커피 향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마침 우리 둘의 일정이 맞은 오늘, 아내가 좋아하는 소금커피 맛집을 다시 한번 가기로 했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적당한 거리의 드라이브 코스. 사실, 늘 사람이 많고 자리가 없어 늦가을 한기에도 바깥에서 으스스 떨면서 소금커피를 마셨던 그곳이다. 3년 동안 잘 막아내었던 돌림병 끝물에 결국 우리 세 식구가 왕창 걸려버렸던 시점도 바로 설 다음날 친구네랑 갔던 그 소금커피. 다시 그곳에서 우리 부부의 회복을, 일상 복귀를 스스로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아내는 주말 부부인 친구 아내와 절친이다. 서로 일거주 일투족을 마치 보고하고 자랑하듯이 공유하는 사이. 미용실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서 톡이 왔다. '배고프지? 내가 그릭요구르트 만들어 갈 테니까 차에서 먹고 출발하자. 참, **씨한테도 같이 가자고 했어. 어제 @@이 때문에 마음고생이 있었던 듯'. 그렇게 중간에 A를 픽업하고 셋이서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친구는 지방법원에 근무한다. 목요일 저녁에야 집에 와서 일요일에 내려가는 일정이 벌써 1년 반. 아니 첫해 2년을 빼고 지방에 혼자 머무른 지 십 년째. 다행히 7월에는 우리 집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새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아내는 나를 핑계되지만, 본인이 더 신나고 들떠 있다. 결혼 후 스무 해 넘게 낯선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네 사람들과 교류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아내다. 부산, 울산, 대전, 청주로 옮겨 다니는 그 친구네를 만나러 가고, 만나고 오는 그 시간을 그래서 그렇게 더 좋아라 했다. 그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더 기분이 좋았고. 


친구네 큰 아이는 공부를 잘한다. 해도 해도 너무 잘한다. 중1이 수학을 고등학교 과정을 이미 절반을 끝냈단다. 아마도 친구 없이 혼자 키우는 부채감을 스스로 간직한 A의 수고로움과 아이 스스로의 욕심의 합작품이지 싶다. 중1 아이에게 아빠가 꿈이다. 하지만 한 살 터울 나는 둘째는 언제나 피아노를 치고 있고, 기타를 들고 다닌다. 배우고 익히는 속도도 우리 부부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초등학교에서는 인싸라고 한다. 친구들은 물론 모르는 어린이들까지 '기타 오빠'라고 불린다고. 이미 길거리에서 버스킹도 해서 5만 원이라는 거금도 버는 수준. 그래서 어제 삼촌, 이모랑 드라이브를 나간다고 하니까, '생전 처음 자기 힘으로 번 돈'이라며 거금 1만 원을 커피 사 드리라고 내놨다는 둘째다. 우리 형제처럼, 형제지만 참 많이 다른 형제들이다. 그 사이에서 항상 밀고 당기느라 다른 이들의 죄를 다스리는 친구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항상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게 유무죄를 판단하는 A. 아내는 항상 그 A를 동병상련으로 살뜰히 챙긴다. 두 아들의 어린 추억 속에 가장 또렷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뜨거운 여름날, 삼촌네 차를 타고 갔던 어떤 섬 - 강화도였다 - 에서 먹었던 편의점 컵라면이란다. 


그렇게 우리 셋은 파주 저 안쪽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커피집을 찾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텅텅 비어있는 자유로를 만끽했다. 아내들끼리 조곤조곤 수다 삼매경에 빠진 그 소리가 나에게는 발라드처럼 들렸다. 흘러나오는 라디오 노래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뿌연 하늘마저 랑카위의 정수리까지 내려앉았던 오래전 파란 하늘처럼 상쾌했다. 수다 속에서 자주, A는 친구도 뭐 좋아하는데, 잘 먹는데, @@이는 그것만 먹는데라며 그 자리에 없는 남편과 아들들을 자주 소환했다. 정말 집밥을 요리처럼 잘 해내는 A다. 그리고 그 A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아내다. 친구와 나는 그래서 참 복이 많다,라고 자주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더더욱 옆에서 서브 역할을 하려고 항상 서성인다. 플레이팅을 하고 설거지를 서로 도맡아 하려고 주방에서 늘 기웃거린다. 집을 비운 친구의 미안함이고 아내의 수고로움에 대한 고마움이다. 동갑내기 요천이 아내를 만난 나의 행복이다. 그러는 사이 차는 어느새 커피집 앞에 도착했다. 도로를 올라가면서 올려다보니 '어 오늘은 차가 하나도 없는 듯' 했다. 그 순간, 입구를 입간판이 아담하게 막아서고 있었다. '휴무'.  


나도 아내도 되도록이면 '미리' 상황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처럼. 그렇게 가는 게 드라이브니까. 설레는 마음으로 가는 거니까. 알고 나서 그다음 행동까지 고려하는 건 순수한 드라이브의 정신이 아니니까,라는 생각에 일찍부터 말없이 동의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내와 A는 다음 장소를 자연스레 나에게 알려주었다. 상호명을 네비에 입력했다. '무슨 무슨 두부마을'. 그런데 이십여 분 뒤 네비가 알려준 대로 도착한 길 끝 이정표에는 커다랗게 '판문점 13km'라고 쓰여 있었다. 외길이었다. 승용차 한 대만 통과할 수 있는. 다리 입구에는 군인들이 여럿 서 있었다. 도로 양쪽의 철조망이 우리 차를 감싸 안을 태세였다. "무슨 일이십니까".라는 일부러 힘을 준 듯 날카롭지만 앳된 눈빛의 젊은 군인이 바리케이드 앞에서 우리 차를 막아섰다. 아내는 "뭐야, 여기 어디? 어 우리 북한 가는 거야" 하면서 까르르하고 웃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길을 잘못 들어섰군요"라는 내 말에 표정 변화 없이 다리 쪽을 향해 뭐라고 크게 외쳤다. 그랬더니, 경계를 서던 또 다른 젊은 군인이 일사불란하게 다리 쪽 바리케이드를 내리면서 비어있는 다리 위를 향해 뭐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척척척 뛰어와 맞은편 중앙 분리대처럼 세워두었던 붉은색 콘을 서너 개 손으로 포개 들었다. 경광봉으로 우리 차를 향해 유턴하라고 손짓을 했다. 그렇게 다시 차를 돌렸다. 불과 몇십 초 동안의 '북한 입구'에 대한 탐방, 이라고 다시 달려 내려오는 내내 아내와 A는 까르르, 까르르. 


두 번째 목적지에 A가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5시'에 영업 마감이란다. 35분 전이었다. 그런데 전화기 넘어 그쪽에서 식사가 어렵겠다고 했나 보다. 5시까지 입장이 아니라 5시에 직원들이 모두 함께 '나가야'한다고. 아마도 우리가 검색한 곳이 통제구역 안쪽에 있는 식당이지, 싶은 생각을 혼자 하는 사이. 아내는 세 번째 목적지를 나에게 말해 주었다. 두 식구가 일 년에 몇 번 함께 가는 피자집이었다. 두부 먹고 싶은 아쉬움을 식구들과의 좋은 추억으로 달래기 좋은 장소로 아내와 A가 선택한 오늘의 세 번째 장소. 

 

삼십 년 무사고인 운전자가, 철조망 앞에서 갑자기 시각 능력을 순간 상실하고 남북출입사무소 입구까지 계속해서 달려 올라간 것이다. 대화에 창밖 하늘과 구름에 빠져 있었나 보다. 다시 차를 돌려 내려오는데 딸에게서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어~##아. 점심 먹었어? 엄마? 지금 밥 먹으러 가는 길이지. 그런데"하면서 두부 먹으러 가다 북한으로 갈 뻔했다면서 기분 좋게 웃어젖혔다. 그 옆모습이 참 많이 사랑스러웠다. 차에서 오는 내내 가족 이야기, 백두산 화산 폭발이 임박했다는 이야기를 한참 한 안전염려증 A는 말수가 많이 줄어 있었다. "하하. 제가 준비한 이벤트입니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아내가 알려준 세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집에서부터 2시간 반째 운전 중이라는 걸 허리가 알려주고 있었다. 배도 고팠다. "성관 씨, 허리 괜찮으세요? 운전을 너무 오래 하셔서". A는 나의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라는 사실을 친구와 사귈 때 알았다. 물론 서로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일정 기간을 같이 보냈다. 물론 전학을 온 친구도 졸업 동기다. 동갑내기 우리 넷 중 셋이 그렇게 강원도 두메산골 동기동창. 


튀르키예 지진 이야기는 A를 통해 자연스레 백두산 화산 폭발로 이어지고 있었다. A의 안전에 대한 염려는 걱정이 될 정도다. 분명 엄마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준 이상이다.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한 걱정이 생수를 챙겨야 한다, 마트에서 안전키트를 구매해야 한다, 어디에 가면 뭐가 있더라 하는 식이다. 집 입구에는 대략 마스크가 수백 장이 종류별로 있다. 거기에 일회용 덴탈은 하나도 없다. A 앞에서 아내는 걱정하는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다. 우리 부부는 안다. 결혼 후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좌절하고 힘들어했던 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얻은 귀한 두 아들에 대한 전업주부로서의 책임감. 공무를 위해 언제나 비워둔 아빠의 빈자리가 드러나지 않게 채워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자신의 아킬레스를 아들을 통해 말끔히 지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면서도 우리 부부에게 이런저런 '교육적인' 조언을 언제나 구하려고 하는 배려 가득한 수고로움도. 우리 부부는 그러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들들이 공부를 좋아하고 뚜렷하게 좋아하는 분야가 있어서, 덜 힘들어 보이고, 신나 보여서.


그렇게 세 번째 목적지를 향해가던 익숙한 교차로. 왼쪽으로 돌아다보다 창밖에 '국내산 두부'집이 보였다. "어, 저기 두부집이 있네요. 어때요?" 했더니, 판문점 입구 깜짝 방문 때문에 다들 잊고 있었던 허기가 피자보다는 두부라고 단박에 동의하게 만들었다. 오후 다섯 시가 막 넘어서고 있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만나서 우리 셋은 모두 배가 고팠다. 두부를 한판씩은 먹을 기세였다. 돌아온 후각을 증명하듯 들어서자마자 구수한 콩 내에 기분이 좋아졌다. 배가 더 고파졌다. 앉자마자 우리는 청국장, 콩비지 정식, 모두부를 주문했다. 모두부는 떨어졌단다. '아, 두부 맛집은 모두부가 원래 일찍 떨어지지'라는 눈빛으로 청국장을 하나 더 추가. 그렇게 나온 음식은 역시 맛있었다.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공깃밥도 기름진 흑미밥. 아내와 A가 한 공기를 먹는 동안 나는 두 공기를 정성껏 씹어 삼켰다. 그런데 정식이었지만 반찬은 깍두기, 콩나물, 취나물, 김치 등 정식에 따라 나오는 메인이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셋의 눈길이 동시에 모인 반찬이 하나 있었다. 감태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감태. 이십여 년이 넘는 기억 속, 장모님의 밥상 위에 올려 있던 그 감태였다. 그런데 이렇게 김처럼 쌓여 먹을 수 있도록 널찍하게 반찬으로 올려주는 식당은 우리 모두에게 처음이었다. 역시나 셀프바에 감태는 없었다. 이럴 때 가장 용감한 사람은 A. 아름다운 미소와 조곤조곤한 말투로 '부탁'을 잘하신다. 그렇게 우리는 주방 저 안쪽에서 비밀스럽게 꺼내 주는 것 같은 감태를 무려 세 번이나 더 얻어먹었다.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부탁'을 해 준 A 덕분에. 김이 나는 흑미밥 위에 취나물을 올려서 감태로 싸 먹으니, 정말 추억 돋는, 잊었던 입맛이 살아 올라왔다. 배부른지 모르고 밥공기를 두 개나 먹은 내가 정말 오랜만일 정도로. 국내산 두부 맛집이 사실은 숨어 있는 '감태 맛집'이라는 비밀을 셋만 알아낸 것 같은 기분으로. '엄마 언제 와'를 수시로 확인하는 두 초등 아들을 만나러 다시 달려가는 동안 A는 감태를 검색했다. 그 정보를 아내에게 공유했다. 그러면서 친구와 아들들과 다시 꼭 그 두부집에 들러야겠다고 몇 번을 다짐하고 있었다.


그날 원래 예정했던 소금커피 맛집을 못 간 아쉬움을 멋진 카페로 대신했다. 늦은 6시가 넘어, 진한 커피 세 잔에 또다시 감태가 화제였고, 이사, 건강이 수다였다. 그리고 돈을 버는 행위는 다 같지만, 먹는 부분을 제외하면 그 돈을 어디에 집중적으로 쓰는지는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는 중, 나는 속으로 은근히 아내를 걱정하고 있었다. 커피 때문에. 그다음 날. 아내는 가족방에 톡을 남겼다. '한숨도 못잠ㅜ. 감태 덕분에. 커피 덕분에'. 조금 이른 오후에라도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잔다. 아내도 장모님도. 그다음 날. 우리 집에는 감태 상자가 택배로 배달되어 왔다. 잠들지 못한 아내가 A의 도움을 받아 수소문한 감태를 주문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도, 그다음 날도 감태에 고슬고슬한 밥을 또 먹었다. 



한줄 요약 : 맛집은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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