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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Feb 20. 2023

13시간의 월드 투어

사진: Unsplash의Konrad Ziemlewski

아침 10시 다 되어서 일어나 나를 찾아 베란다로 나온 일팔청춘 따님 눈이 보이질 않는다. 퉁퉁 부었다. 거의 감긴 눈으로 양팔 벌려 나를 안아준다. 따듯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어쩜 그렇게 피부가 뽀얗고, 생기 넘칠까. 옅은 분홍 빛 입술은 재잘거릴 때면 기분마저 좋아지게 만든다. 그 나이 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노안이었는데-그러나 노안의 장점도 많다. 인생 길게 보면.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참 다행이다. 나를 닮지 않아서. 


잠만보 따님이 토요일 새벽, 6시 13분. 그렇게 나를 찾아 베란다로 눈을 감고 왔다. 우리 따님에게는 아주 아주 새벽 시간이다. 마스크 이후 3년 반 만에 친구 둘과 함께 월드 투어를 가는 날이다. 돌림병 확진 때문에 한 번, 다른 스케줄 때문에 또 한 번. 두 번이나 연기되면서 성사된 오늘이란다. 따님은 그렇게 아침까지 스스로 챙겨 먹고 예쁜 교복 - 친구한테 빌린 교복이다. 따님은 스쿨링을 홈에서 하는 중이라 고딩 교복이 없다. 그래서 더 교복이 입고 싶었을지도 - 을 챙겨 입고 8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아침에 나서기 전에 너무 예뻐 사진 좀 찍자 해서 찍었는데, 주질 않는다.... 모자이크 한다고 했는데도, 글감으로 사용할 걸 알기 때문에 ㅋㅋ,. 신비주의 일팔 청춘이다.)


이런 부대 비용은 자기 용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게 우리 집 원칙. 그래서 그런가. 요즘 일팔 청춘들도 참 알뜰하다. 신비한 환상의 나라 홈페이지에 떡 하고 쓰여 있는 자유이용권은 청소년이 오만 사천 원. 비싸다. 내 시급보다 훨씬. 그런데 미리미리, 어찌어찌 티켓팅을 해서 이만 몇천 원에 확보했단다.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하는 정보 활용 능력이 좋다. 주어진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아 의미와 즐거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문제해결력을 극도로 발휘한다.  


OECD에서 발표한 21세기 학습자에게 필요한 역량들이다. OECD Education 2030: The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OECD 교육 2030 프로젝트는 '현재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 취업을 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인 2030년 무렵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핵심역량을 기를 수 있는 교육 방안에 대한 연구 결과'이다. 여기서 말하는 역량이란 Competencies. 즉,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이다. 역량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발현(representation)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어떤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개념이 아니다. 


(출처 : https://www.oecd.org)

OECD Education 2030에서 역량은 지식Knowledges, 기술Skills, 태도적 가치Attitudes and Values로 구분한다. 그리고 각각의 영역을 13개 하위 영역으로 나뉘고 각각의 세부 역량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다. 


https://www.mckinsey.com/industries/public-and-social-sector/our-insights/defining-the-skills-citize


여기에서 제시된 여러 가지 역량을 크게 압축하면 (개인과 사회의) 웰빙Individual and collective well-being,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ie Competencies, 학생주체행동Student Agency이다. 웰빙은 우리 사회에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용어여서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개인과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에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변혁적 역량의 영역에는 새로운 가치 창조하기(Creating New Value), 긴장과 딜레마에 대처하기(Reconciling Tension & Dilemmas), 책임감 갖기(Taking Responsibility) 등의 세 가지가 포함된다. 


가치 있는 활동은 남녀노소, 성별에 관계없이 추구하는 것.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의미. 좋아하는 이들과 가치 있는 활동으로 어렵게 만들어 낸 시간을 최대한 누리는 것. 셋이서 탈 것을 정하는 합리적인 대화 과정, 상대방을 설득하고 경청하는 태도를 통해 오랜 기다림(줄 서기)의 의미를 유지하는 것. 그 상황에서 일어나는 예상하지 못한 경우의 수 - 친구의 변심, 다른 탈 것에 대한 새로운 정보 획득 후 계속 기다릴지, 이탈했다가 다시 복귀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에게 자기 위치 확보를 제안하고 협조를 구하는 태도 등 - 를 유연하게 해결하는 것이 긴장과 딜레마에 대처하고 그 결정과 결론에 대해 개인적, 사회적 책임감을 유지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미세하지만, 매우 중요한 가치로운 유연성에 대한 연습인 것이다. 


2030년대의 새로운 사회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다양한 갈등이 예상하지 못한 양상으로 발생할 것이다. 그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역량, 즉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통한 경제 활동과 새로운 생활 방식, 사회적 모델 등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다. 거대 사회가 될수록 벗어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본능에 가깝다. 그렇게 아싸(아웃사이더)로서 존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역사는 상호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사회에서 긴장과 딜레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해소하는 이들에게 맞춰져 있다. 사회적 기본 질서, 윤리적 해결 방안, 한정된 재화의 정의로운 분배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 그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의 웰빙 - 그리고 웰다잉 - 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역량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개인의 행동 - 그리고 사회적 합의에 의한 실천 - 으로 인한 결과를 예상하고, 그에 따른 성과와 실패를 분석하여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되는 것이다. 



따님이 찍어 보낸 ㄹ월드 야간


일팔청춘 따님은 도착, 출발과 함께 낮의 동선을 몇 번 사진과 함께 가족톡을 통해 알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가치 있는 활동을 강조하고, 안정과 안전에 대한 확신과 전달을 통해 보호자가 삶을 잃지 않도록 배려한다. 다음 날 아침 10시. 눈곱도 떼지 않은 채 자신의 역량을 자랑한다. 오픈런부터 나올 때까지 13시간이 넘는 동안 체력과 텐션을 유지했단다. 대단한 역량이다. 체력과 텐션을 조절하는 것, 위에서 말한 모든 역량을 아우르는 핵심이다. 일상에서 이 두가지를 어떻게 조절하고 유지하는가는 조금 더 살아본 이들에게는 피부에 와닿는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띠리릭, 띠리릭 다이얼링으로 쉽게 조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파트내 헬스장에 비치되어 있는 텐션조절기!!


일팔청춘 따님은 자이로 드롭, 자이로 스윙, 번지 드롭, 후렌치 레볼루션, 바이킹 등 5가지 놀이 기구를 총 8회를 탑승하면서, 친구와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단다. 성취감은 하늘까지 솟았고, 자기 체력은 급상승했단다. 놀이 기구 사이사이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여유 있게 빠네 파스타, 츄러스, 소세지, 마르게리따 피자를 친구들과 정확히 N분의 1로 나뉘 먹고. 13시간이 넘는 완벽한 ㄹ월드 투어였단다. 참, 부지런하고 아주, 합리적이고, 시간을 잘 활용한다. 월화수목금, 주 5일을 출퇴근하듯 1시간 반 거리를 영어 공부에 집중하느라 체력의 중요성을 일찍 느끼고 있는 일팔청춘 따님. 스스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조용히 홀로 고등 검정고시를 치렀다. ㄹ월드 투어를 통해 자기 꿈을 좇아 진짜 월드 투어를 하기 위한 체력 준비는 끝났단다. 자기 미래에 대한 '자체 확신' 덕분일 거다. 


'오구 오구, 스스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ㄹ월드가 좋은 거야, 친구 만나는 게 즐거운 거야'

다시 가고 싶단다. 그리고 그 이유는 좋은 사람들과 마음이 편한 사람들과 함께 해서 그렇단다. 


역량은 타고 나는 게 아니다. 스스로 나오는 게 아니다. 작은 영역에서의 개인적 발현의 누적된 총합이다. 일상에서 찾아보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들의 총합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만들어 제시된 다섯 개 중의 하나를 고르는 학습이 아니라 스스로 그 다섯 개를 뽑아내야 하는, 프로젝트형 배움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작은 성공의 경험. 그 빈도가 맞아져야, 넘쳐나야, 그런  환경에 자주 노출되어야 근육처럼 천천히, 천천히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너무나도 참 다행이다. 난 이미 나름의 역량을 가지고 밥벌이를 하고 있어서. 내가 지금 일팔청춘 우리 따님과 같은 나이로 태어났다면. 우와. 이만큼이라도 다시 해낼 수 있을까 싶다. 당장, 13시간을 돌아다니면서 줄 서기를 할 수 있을까. 맛집에 줄 서는 것도 힘겨운데. 역량은 고사하고 대학도 합격 못할 것 같기 때문에. 우리 남매가 가끔 나에게 던지는 밸런스 게임 질문 중 하나. '몇백 받을래? 다시 고등학생 될래?'라고 물을 때마다, 난 지금의 내가 좋다. 다시 안 간다. 젊어지기 싫다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줄 요약 : 작은 성공의 경험누적치가 그 사람의 역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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