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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건 웃긴 에피소드뿐

힘들고 고된 여행의 의미는 추억으로 남는다

by 윤지민

켐핑카 생활, 일주일째.

나의 극P DNA는 아빠에게서 왔다.


우리 가족이 선호하는 여행 스타일은

오늘 가서 자보고 내일 갈 데 정하는 건데

이런 여행이 성수기엔 참으로 쉽지않다.


호주가 이쯤이면 비수기일거라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이번 주가 브리즈번 학교 방학에

롱위켄드까지 겹쳐 국내여행으로 완전 극성수기.


선샤인코스트 주변 바닷가가 그렇게 좋다는데

이미 바다 근처 숙소는 모조리 풀부킹.

그래서 결국 내륙 여행을 선택했다.


그 유명한 누사 비치는 차로 드라이브만 해보고,

페리를 타고 들어가서 나오기도 쉽지않은

누사 노스 쇼어에 박혀서 앵무새와 왈라비랑 놀았다.


레이크 위븐호에서 하루밖에 못 잔다해서 걱정했는데

막상 가보니 호숫가에 캥거루가 뛰어다니고

아빠 지인분도 찾아와 하루를 같이 보낼 수도 있었다.


아무리 찾아도 도저히 잘 데를 못 찾아서

겨우 찾았던 작은 마을 공터에서 하루 자는데

아침에 보니 사람들이 온동네 말이랑 소를 데려와

로데오 경기를 하길래 좋은 구경도 했다.


또 겨우 겨우 찾아간 산 속 캠핑장이

막상 가보니 전 날 전화로 예약한 상황과 달라

당일 잘 곳을 찾느라 수십군데 전화를 돌려보고

구불구불 산 길을 따라 운전하며 고생한 끝에

결국 다시 브리즈번에서 지내던 집 근처에

여태 가본 중 제일 쾌적했던 캠핑장을 찾아내

오랜만에 그리웠던 쇼핑몰도 다시 가볼 수 있었다.


P의 여행은 정해지지 않아서 고생도 많지만,

정해지지 않았기에 경험한 우연한 순간들이

새롭고 귀중하며, 무엇보다도 감사하다.

어떻게든, 해결은 되니까 말이다.


차를 세운 그곳이 오늘의 집이 되고,

자연과 함께하는 낭만적 캠핑카 여행의 현실은

와이파이는 커녕 핸드폰도 잘 안 터지는 상황에

좁고 불편한 공간에서 함께 부대끼며 웅크리고 자고

씻는 것도, 먹는 것도 모두 불편할 뿐 아니라

벌레와 추위와 멀미를 견뎌야하는 삶이다.


이런 시간을 삼대가 함께하며 남는 게 뭘까 생각하면

사실 아름다운 풍경도, 새로운 경험들도 아니다.


결국 오랜 시간동안 우리에게 남는 건,

그냥 어떤 순간 누군가의 웃긴 한 마디에

모두가 깔깔 배아프게 웃었던 이야기.

오히려 지금은 고생하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돌이켜보면 웃픈 에피소드들이다.


결국 우리의 관계에서 남는 이야기들.


힘든 날도, 좋은 날도, 모두 껴안고 지나가는

이 매일의 여정 속에서 우리가 함께한 이야기들.


몇 년이 지나고,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옛날에 우리가 그때 여행할 때 그랬는데~”

이렇게 같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들.


그게 전부고,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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