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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만 남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겪고 배운 것이다.

by 윤지민

호주에 온지도 어느 새 2주가 지났다.


그동안의 여행에서 도민이는 다양한 캠프에 참여해왔다.

방콕에서 3일, 발리에서 하루, 호치민에서 4주,

밀양에서 2주, 그리고 이번엔 호주에서 일주일.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겠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도민이가 전세계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 뛰어놀며

즐겁게 언어를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도민이는 어릴 적부터 낯가림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잘 안기고,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만큼 호기심에 눈이 반짝이던 아이.


새로운 경험이라면 어디든 먼저 튀어나가던 모습에,

‘얘는 확실히 나를 닮았구나’ 하고 웃곤 했었다.


하지만 도민이가 7살이 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는 ‘관계’를 의식하고,

‘비교’를 신경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친해지기도 전에 헤어질 걱정을 하고,

자신이 다른 아이들보다 못하는 순간에 대한

불안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건,

그냥 커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텐데,

나는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여전히 호기심이 폭발하는 아이로만

도민이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방문할 때 호주가 마침 봄방학 기간이라

이 지역의 모든 캠프는 거의 다 찾아보고

신중하게 고민해서 선택했었다.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스포츠 캠프였고,

무려 일주일간 15개의 종목을 경험하는 캠프.

아이와 함께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아이도 굉장히 기대에 부풀어 함께 등록을 결정했었다.


하지만 막상 가는 날이 되니

넓은 홀에서 60명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걸 처음 마주한 아이는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얼떨떨하게 들어갔다.


아침마다 매일 걱정하고,

끝날 때면 신나있던 처음 며칠.


아이의 기분에 엄마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오늘은 잘하고 올까, 재미있었을까,

친구는 사귀었을까 마음을 졸였다.


그런데 4일째 되는 날,

아이가 캠프에 가기 싫다며 말했다.


“오늘 내가 규칙 설명을 못 알아들어서 우리 팀이 졌어.

친구들이 뭐라고 하진 않았는데… 그게 너무 싫었어.”


덤덤하게 전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내가 괜히 눈물이 차올랐다.


다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하고 속상했다.

처음은 원래 다 어려운 거라고,

금방 친해지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걸까.

내 욕심으로 아이에게 상처만 남긴 건 아닐까.


물론 친구들과 놀며 재미있는 순간도 많았지만,

그 한 번의 경험이 너무 크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결국 마지막 날엔 입구 앞까지 갔다가

오늘은 안 들어가고싶다고 했고,

나는 아이 손을 잡고 돌아왔다.


그날 나는 도민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민아, 너는 4일동안 용감하게 참여했어.

다른 아이들은 다 자기 언어로 했지만,

너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4일이나 해낸 거야.

그건 정말 대단한 거야.

엄마는 네가 그걸 해낸 용기가 자랑스러워.


다만, 우리가 처음 함께 약속했던 5일을

다 못 채운 건 조금 아쉽기는 해.


그렇지만 엄마는 네가 억지로 힘든 걸 참아가며 갔다면,

그게 엄마 잘못인 것 같아 미안하고 속상했어.”


그렇게 아이와 이어진 긴 대화 속에서

언어로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던 도민이가,

조금씩 자기 마음을 설명하려는 게 느껴졌다.

아직 미미하더라도 그건 분명한 성장이었다.


우리는 잃은 것이 아니다.

상처만 남은 것이 아니다.

겪고 배운 것이다.


그동안 나도 몰랐던 아이의

섬세한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도민이는 자기 감정을 들여다보고,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들을 배워간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나에게도, 도민이에게도 필요했던

‘진짜 성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몇시간, 몇일 더 아이가 영어로 노는 것보다

아이와 내가 더 진하게 연결되고 공감하는 경험.


이게 더 중요하다는 걸 항상 잊지 말아야지.



앞으로도 새로운 곳, 새로운 경험은 이어질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쌓여갈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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