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내려놓는 것이 가장 두렵다

대학원생 2학기 5주차의 일기

by 윤지민

공부를 시작한 것이 과연 잘 한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연휴였다. 연휴기간 중에 친척들을 만나면 아직 아이 계획은 없는지 물었다. 대학가면 취업 얘기, 취업하면 결혼 얘기, 결혼하면 자녀계획 얘기의 공식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생애주기별로 겪는 일이니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결혼 전에는 결혼과 동시에 안정적인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보니 모든 것이 너무나도 현실인지라 두려움이 커졌다. 물론 지금 자녀 계획을 할 수 없는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많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결혼과 동시에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적어도 어느 정도 공부를 마무리할 때까지는 자녀계획을 미룰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요즘 학교가 너무 힘들다. 학교는 학교대로 따라가면서, 그동안 벌려놓은 일도 수습해야하고, 새롭게 또 내 일을 만들어야한다는 부담을 계속 가지고 가려니 쉽지가 않다. 셋 중 하나에만 집중해도 제대로 하기 쉽지않을 일들을 꾸역꾸역 하겠다고 버티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특히 선행연구도 찾아보고 진득하게 앉아 책도 읽어가며 절대적인 시간을 많이 투입해야만 그만한 결과가 나오는 공부가 제일 힘들다. 2주남은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각 수업마다 term paper를 준비할 때가 오니 더욱 눈 앞이 캄캄하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자괴감은 결국 현실도피로 이어진다. 읽어야하는 논문은 산더미인데 흰 종이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하나 제대로 읽는 것조차 버거워지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나는 왜 내 돈을 줘가면서 가족계획도 미뤄가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공부를 통해 얻고 있는게 스트레스 말고는 또 뭐가 있나. 모든 힘든 상황은 다 공부 때문이라고 탓하게 된다. 온갖 나쁜 생각들이 머리를 잠식하면서 고작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힘든 걸 보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보다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한다. 그럼 또 다시 도피하고 싶어진다. 뭘 해야할지 머리만 복잡하고, 할 일은 태산인데 무기력해지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실행력도 떨어진다.


연휴후유증까지 겹쳐 더욱 심적으로 힘들었던 한 주를 보내며 곰곰히 생각해본다. 결국은 모든 게 내 문제다. 다른 일보다도 학교가 제일 힘들었던 이유는 스스로 기대하는 수준만큼 학생의 역할을 못해내고 있는 내 모습이 가장 싫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더 잘하고 싶고, 더 잘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질책했고 그런 생각이 나를 더 위축되게, 또 자존심 상하게 만든다. 결국 내 욕심 때문이었다. 욕심부리는만큼 마음이 무거운 거였다. 그냥 조금만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천천히 해도 될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나는 너무 욕심이 많다.


세계여행이라는 인생의 모멘텀을 거치면서 내려놓는 연습을 충분히 했었다 생각했고, 내 감정 컨트롤도 충분히 연습했다 생각했었는데 요즘 같아서는 모든 게 리셋된 느낌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내려놓아야겠다. 하나씩 차근차근. 모든 걸 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원하는 걸 모두 다 하지 않아도 괜찮다,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나'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두려움을 아직도 극복해나가는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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