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우리 집 앞에서 킥보드를 타고 있는 7살짜리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째도 타고 싶다고 킥보드를 막 가져온 차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이와 내가 만난 것은 5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에게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제가 "엄마가 당황하실 거야."라고 했더니 "전혀 당황하지 않으실걸요?"라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집에 놀러와서 첫째와 즐겁게 놀았다. 처음 만난 아이들끼리 어찌나 잘놀던지 신기했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고 이런 경험이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웃들은 말 끝에는 꼭 얘기를 합니다.
언제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아파트만 살았던 저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었습니다.그러다 보니 누구를 초대한 경우는 더욱이 없었습니다. 친구를 초대한 적은 있어도 옆집이나 아랫집에 가서 "저희 집에 언제 한번 놀러 오세요."는 들어본 적도 한적도 없습니다. 처음 들었을 땐 의아하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결국 한참을 재밌게 놀던 그 아이는 갑자기 첫째를 따라서 우리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물론 "동생네 집에 가도 돼요?"라고 물어봤고, 흔쾌히 승낙했지만 저에게는 아직은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저희 집을 날로 공개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저는 깔끔한 성격이 아니라 집이 정말 너저분했는데, 갑자기 온 손님에 무척 당황스러워남편과 열심히 집을 치웠습니다.혹시 그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찾으러 올까 우려가 되었던 점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직 집에 초대하는 것도,초대받는 것에서도 초보였습니다.
며칠 전 옆집 아이랑 첫째가 킥보드를 같이 타면서 그 집 엄마에게 저희 단지네 아이들에 대해서는 정보를 얻은 상태라 "저는 00입니다." 하는 그 아이의 자기소개에 그 아이가 몇 호인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엄마가 걱정할까 봐 단톡 방에서 찾아서 연락을 했습니다. "0호 아이 저희 집에 있습니다." 그러나 0호 어머니는 제 예상과는 달리 "애들이 잘 노나 봐요. 나중에 저희 집에도 같이 오세요."라는 답을 주었습니다. 제 스스로 주택 라이프 초보라는 것이 더욱 와 닿는 시간이었습니다.
한참을 놀던 그 아이는 첫째에게 다시 밖으로 나가자고 했고,저희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던또 다른친구들에게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첫째는 본인과 놀다 새로운 친구들에게 간 형에게 아쉬움이 느껴졌는지, 아님사람이 많아지는 것 이 낯설었는지 집에 가고 싶다고 하여 그 아이의 엄마에게 상황 설명을 연락드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옆집과 사이좋게 지내고, 특히 애들끼리 잘 논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아파트와는 달리 주택의 경우 집 구조가 집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 집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애들은 안정적이고편리한 위치의 친구들과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기에 이웃들이 사이좋게 지낸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아파트만 살았던 저는 어색하였습니다만, 언젠가는 익숙해지고 싶은 좋은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저희 애들은 회사 어린이집에 다니다 보니 인간관계가 매우 협소하고, 친구들이 고정되어 있어서 아쉽다고 느끼는 찰나였습니다. 다양한 친구들과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좋은 기회처럼 느껴졌습니다. 또한 주택에 사는 것이 처음인 저에게도 궁금한 것들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될 것 같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지금까지 만난 이웃분들은 이런 친화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또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인사를 좋아합니다. 애들과 킥보드를 타거나 산책을 하다 이웃들과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해주며, 꼭 한두 마디씩 대화를 합니다. 아파트에 살 때와 달리 이웃의 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주택에 이사 오고 제 눈에는 신기했던 것이 있는데 바로 집에 팻말을 달아놓은 것입니다.익명성을 좋아하던 제 눈에는새로운 점이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집.' '행복이 가득한 집'과 같이 어떤 집이라고 표현을 해놓은 분들도 있고, '철수&영희네 집'과 같이 이름을 표현해 두신 분도 있고, '00재'라고 집 이름을 붙여놓은 집도 있습니다. 아니면 정말 심플하게 '0호'라고 붙여놓은 곳도 있고요.
회색에는 사는 구성원 이름을 넣어놨습니다.
사실 저는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한 부분이었고, 아직까지 익명성에 더 익숙해져 있어서 제 이름을 동네분들께 공유한다는 것이 꺼려졌는데,남편은 우리 집도 뭔가 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비록 내가 소유하고 있는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동안은 내가 원하는 삶의 지향점을 줄 수 있는 방향성을 집과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김춘수 시인의 '꽃' 시처럼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공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결정하지 못한 저의 집 문패를 어떻게 가져갈지 이번 주말 남편과 고민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