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마음

by 하지은

처음 '외롭다'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와닿았던 날. 굉장히 낯설었다. 주변의 친구, 지인들에 비하면 조금 늦게 그 단어를 사용하고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생긴 것 같다. 하루는 궁금했다.


언제부터 외롭다고 느낀거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외롭다는 느낌을 가져본적도 생각해 본적도,아니 아예 내 삶에는 그런 개념 조차 없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던 단어였다. 헌데 어느 날 문득, '외로움'이 다가왔고, 자주 느끼고 언급하게 되면서 빈도가 잦아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외롭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외로움을 달래달라고 하거나, 특별한 액션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런 느낌이 낯설어서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심리학 책도 읽게 되고 자연스레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되었었다. 잊고 지냈던 과거의 일상들.


밤 11시, 12시... 아이들은 모두 귀가하고 혼자 골목에서 불 꺼진 집을 보며, 아직 아무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구나 생각하며 전봇대 밑에 서 있는 내가 있었다. 일하시는 부모님, 매일 야간수업으로 늦게 들어오는 언니. 남들은 늦둥이라 많은 사랑을 받았겠다고 늘 말해주지만, 나의 기억 속에는 '혼자인 나'가 크게 자리 잡아 있었다. 물론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고, 함께 어디든 가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 주시고, 하고자 하는 것들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시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부모님의 사랑 방식이었고, 그런 면에서는 늦둥이로서 사랑을 가득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혼자서 무엇이라도 해야지


혼자 친구네 가서 놀기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생활이었다. 부모님이 바빠서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 없었다. 그저 나만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 나갔던 것 같다. 친구들은 언니,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말들도 했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다른 형제를 바란적도 원한적이 없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예 HOPE자체가 존재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만족해!도 없는 그냥 지금에서 더 바라는 것이 없었던 상태라고 해야 하나.


엄마 이거 한번만 봐줘요.


식당에서 옆 테이블에 네명의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날 채비를 하는 부모님, 그리고 형제. 막내 아들이 장난감을 보여주며 한번만 봐 달라고 이야기 한다. 그에 엄마는 '벌써 몇번 씩 봤잖아. 아까도 봤고.' 엄마의 대답에 아이는 '형 이거 한번만 봐바.'라고 대상을 변경했다. 아빠는 이미 계산하러 자리에 없었다. 형은 동생의 말에 쳐다도 보지 않고 못 들은 사람처럼 자리를 비웠다. 엄마는 짐 정리를 하고는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의 표정을 살피게 되었다. 정확히는 모르지겠지만, 마음 속으로 자신의 말을 혹은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모습에 속상함이 가득한 듯 했다. 아이들이 반복적으로 같은 행동을 하는 것들을 어른들은 충분히 알텐데, 다른 말로 아이의 말을 들어주거나 마음을 달래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지랖처럼 아이에게 앞으로도 그런 상황들이 생길 때마다 아이는 얼마나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입게 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 이 생각은 내가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되어 외로움을 느낄 때 생각해 보니, 어릴 때의 내가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그런 개념 조차 없었기 때문에 몰랐겠지만, 지금은 안다. 그래서 늘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어했고, 친구들과의 시간, 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그것이 줄어들거나 혼자가 되면 외로워 지는 느낌. 알아차린 후 부터는 나를 달래주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는 것. 그리고 혼자서 온전히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어야 누군가와 함께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쉽지 않겠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그 아이의 눈높이로.. 아니 한 인간의 마음, 생각으로 존중해 주고 사랑할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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