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해보는 겁니다

실패는 없었습니다, 배움만 있었을 뿐

by 지은담
두려움을 지나온 그 자리마다, 작지만 단단한 꽃이 피어 있었다

무더위 탓인지, 몸이 유난히 늘어지고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기운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새로운 수업에 등록했습니다.


온라인 수업에 앞서 열린 오프라인 모임.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과 마주한 순간,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열정이 다시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쉰을 넘긴 지금, 하고 싶은 일이 하나둘 늘어나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한편으론 기특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해보면 알게 되겠지요.


오랜 시간 경력 단절 여성으로 살아오며, 새로운 도전은 내게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쓸데없는 짓이다"라는 비아냥도 있었고, 당장의 안정을 깨면서까지 불확실한 내일에 투자하는 일은 늘 두려움과 함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쓸데없다 여겨졌던 선택들이 나의 시야를 넓히고 분별력을 키워주었습니다.

그 덕에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만나게 되었지요.


이제는 확신합니다.

욕심이 아닌, 배움에 대한 순수한 도전은 늘 삶에 값진 가치를 안겨준다는 사실을요.


날이 더워서일까요. 문득, 산골살이 하던 시절의 어느 폭설 내리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깡여사의 깡부림 일화.

내 살던 곳은 산을 끼고 있어 유독 눈이 많았습니다.

초겨울 어느 날 오후, 폭설주의보가 내렸습니다. 아이들 귀가가 걱정된 나는 서둘러 태권도장을 찾았지요. 도장 셔틀버스가 있었지만, 수업이 마칠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가파른 고갯길이 있었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도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졌기에, 눈이 오면 사실상 통행이 어려워졌습니다.


아이들을 태운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하늘이 어두워지고, 눈발은 미친 듯이 쏟아졌습니다.

도로는 순식간에 하얗게 뒤덮였고, 내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고갯길 중반에 이르자 앞선 차량들이 줄줄이 멈춰 섰습니다.

운전자들은 차를 버리고 도보로 내려가기 시작했지요.

나는 지갑도 챙기지 못한 상태였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내린다 해도 갈 곳이 없었지요.


그 순간, 시내에서 회식 중이던 남편이 떠올랐습니다.

전화를 걸어 다급히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 두 마디였습니다.

“못 가, 알아서 해”


화가 치밀었지만, 더는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무슨 깡이었는지 폭설과 맞붙기로 결심했습니다.


조심스레 액셀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바퀴는 헛돌고, 차는 자꾸 미끄러졌습니다.

경사면 옆으로는 깊은 계곡이 있었고, 공포는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핸들을 잡은 손과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고, 등허리는 금세 땀으로 흥건해졌습니다.


걱정이 되었는지 앞 좌석에 찰싹 붙은 아이들은 말도 없이 눈으로 함께 운전을 도왔습니다.

그 모습에 괜히 더 오기가 생겨, 수차례 빙판길을 돌면서도 기어이 고개를 넘었습니다.


사람이 간절해지면 기적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그날 오후, 우리 차만 그 고개를 넘었습니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 가까이 걸려서 말이지요.

그날의 무모했던 오기, 어쩌면 그게 지금의 깡여사를 만든 출발점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려움도 막상 마주하고 나면 사라지더군요.

이제는 내일이 예전만큼 두렵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마주하면 됩니다.
혼자가 힘들면 도움을 구하면 됩니다.

물론, 아직은 자존심 탓에 쉬운 문제도 어렵게 풀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오늘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내다 보면, 그 일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새로운 환경과 기회가 자연스레 따라오더군요.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되겠구나 싶습니다. 여유가 허락된다면, 더 다양한 경험도 해보면서 말이지요.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그냥 해보면 됩니다.

생각만 하다 끝나는 것보다, 작더라도 시도해 보는 쪽이 백 번 낫습니다.

그러면 뭐라도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작더라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 작은 경험이 언젠가 더 나은 인생의 경로를 열어줄 테니까요.

물론 예의 깡여사의 깡부림처럼 용기가 도를 넘어 광기가 되어버린 사례(?)는 예외로 해두겠습니다.


세상엔 실패란 없습니다. 배움만 있을 뿐입니다.


예전엔 실패라 여겼던 일들이, 돌아보면 꼭 배워야 할 무언가가 있어서 찾아왔다는 걸 살면서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살아보니, 경험만큼 소중한 자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늦은 나이에 또 하나의 값진 경험을 허둥대며 쌓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은 경험 부자입니다.


오늘 배울 것은, 오늘 하루 속에 이미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주어진 하루, 감사히 받아들이고 성실히 살아내면 됩니다.

겁내지 말고, 하나하나 문제 풀듯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했던 모든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오늘도,

그냥 해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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