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터질 뻔 했지
뜨거운 여름이 오길 기다리며 한 달을 보냈다. 어떤 날은 4마일을 달렸고, 어떤 날은 1마일을 겨우 채웠다. 어떤 날은 달리기로 시작해 걷기로 끝낸 날도 있고, 달리러 나갔다 그 길로 버블티를 마시러 가기도 했다. 내 마음도 그랬다. 어떤 날은 그 사람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고 지나갔고, 어떤 날은 풀리지 않는 의문과 함께 그 사람 생각에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 날은 평소 잘 나가지 않던 새벽예배에 나갔다. 새로운 사람으로 그를 잊겠다며 소개팅을 나간 날도, 아직은 아닌 것 같아 급히 약속을 취소한 날도 있었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이 왔다. 여름은 내 생일이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뭘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내 생일을 기억할까?'라는 질문이 생일 일주일 전부터 계속 둥둥 떠다녔다. 생일 전 날 저녁, 여김 없이 공원을 달리러 나갔다. 생각해 보면 그와 교제하던 반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함께 축하할 일이 참 많았다. 사귄 지 두 달 만에 그의 생일이 있었고, 그다음 달에는 크리스마스, 그리고 헤어지기 바로 전 달엔 발렌타인 데이가 있었다.
서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돌아보며 느끼는 거지만 우린 참 달랐다. 며칠 만에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꽃은 최악의 선물이라던 그는 발렌타인 데이에 레고로 만든 장미 꽃다발과 마카롱을 사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휴대용 배터리 점프 스타터 어때? 진짜 좋은 생각이지?"라며 어찌나 뿌듯해하던지. 실용성을 중요시하는 그와 달리 나는 낭만과 감성을 좀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생일엔 축하 풍선과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맨투맨을, 크리스마스 날은 마사지샵 이용권을, 발렌타인 데이엔 향수를 선물했다. 사실 선물은 단적인 예시일 뿐. 전 여자 친구 번호가 개 목줄에 여전히 달려있는게 불편했던 나는 그에게 유독 예민한 사람이었고, 그게 아무렇지 않은 그는 내게 지나치게 쿨한 사람이었다. 이런 식이었다. 그와 나는. 너무나도 다른 조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다듬어서 맞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개 목줄'까지 회상했을 때, 내 귀 바로 옆에서 누가 박수를 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났다. 달리는 내내 그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을 비워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유지하던 페이스를 내던지고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170초, 중반을 유지하던 심박수가 180을 후딱 넘어서고 190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지막 0.5마일이 남았을 땐 내가 멈추지 않으면 심장이 멈출 것처럼 달렸다. 손목에 찬 애플워치를 보니 심박수가 192까지 올라갔다.
'진짜 이러다 심장 터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스친 것도 잠시, 무사히 3.1마일, 5km 달리기를 마무리했다. 숨을 고르려 해도 호흡이 더 가빠지고,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꽂은 에어팟을 뚫고 들어오는 그 순간, 진짜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심장은 터지지 않았고, 그 순간이 지나고 나니 '심장은 그렇게 쉽게 터지지 않지'라며 별거 아니었다는 듯 어깨가 절로 으쓱여졌다.
오늘 내 하루도 그렇다. 그의 생각에 속이 터질 것 같지만, 속은 터지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선물해 줬는데 내 생일 전에 헤어진 게, 생일 선물 못 받는 게 아쉬운 정도인 거다. 정말 딱 그만큼.
생각의 쓰나미가 지나고 나니 어깨가 으쓱여진다. 내일 맛있는 거나 잔뜩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