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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Mar 21. 2023

6. 난 또 앞뒤 맥락 없는 눈물인 줄 알았지

드라마 여주인공 저리가라


5월,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열심히 달리는 사이 겨울이 가고 봄 끝무렵에 도달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노래도, 소설도, 시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얼었던 마음을 녹이기엔 따뜻한 봄이 아니라 더워 죽겠는 뜨거운 여름이 필요했나 보다.


그와 5개월을 만났다. 이전에 말했던 내 이별공식에 따라, 연애기간의 절반인 두 달가량, 정확히는 두 달하고 이 주가 내가 지정한 '이별극복기간'이었다. 이 극복기간이 끝나갈 즈음 일주일정도 휴가를 내 한국에 다녀왔다. 당시 한국에는 결혼을 앞둔 언니 커플과, 나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엄마 그리고 아빠가 계셨다.


하루는 부모님과 언니 커플을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함께 점심을 먹고 디저트 먹으며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저녁약속에 바로 갈 예정이었다. 멀리서 온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자고 해서, 좋아하는 경양식 돈가스 집으로 갔다.


서로가 이만큼 따뜻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도. 언니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으며 재밌어하는 형부 모습도. 내가 좋아하는 달달 짭조름한 데미그라스 소스와 그 옆에 수북하게 담아준 양배추 샐러드. 나는 정말 다 좋았다. 뭐 하나 부족할 거 하나 없는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즐거운 시간처럼 보였을 거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고였다. 고인 눈물을 떨어내느라 눈을 바삐 깜박여야 했다. 큰 사탕을 잘못 삼켰을 때처럼 목이 자꾸 매였다. 매이는 목구멍으로 돈가스를 밀어 넣으니 맛을 느낄 틈이 없었다. 돈가스 한 조각, 양배추 한 움큼. 다시 돈가스 한 조각, 양배추 한 움큼. 모두가 웃을 땐 나도 함께 큰 소리로 하하하.


저녁 약속시간은 한참 남았는데 들를 곳이 있다고, 약속 시간이 좀 당겨졌다고, 생각나는 이유를 다 대고는 먼저 나와 지하철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족들 시야에서 내가 벗어났을 때쯤,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구석에 서서 옷소매로 눈물을 열심히 찍어냈다.

'내 눈물은 도대체 왜 이렇게 앞뒤 맥락이 없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눈물이 헤픈 걸까. 진짜 싫다 정말.'


그래도 억지로 참던 울음을 해결하니 걸린 사탕이 녹아 내려간 것처럼 목구멍이 편해졌다. 그 와중에 울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가족들 앞에서 끝까지 잘 참은 게 대견하기까지 했다. 역 벤치에서 한 시간, 카페에서 한 시간, 두 시간가량 혼자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진정됐다고 느꼈을 때쯤, 한 친구가 먼저 도착했다며 연락을 해왔다. 친구 얼굴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려 하는데 눈물이 또 고였다. 눈을 깜빡일 새도, 어디 숨을 새도 없이, 누가 봐도 티 나는 눈물 참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앞뒤 설명 없이 '나 눈물 나올 거 같아'라고 말했다.


'나 가족들이랑 밥 먹고 왔는데, 너무 좋았는데 계속 눈물 나올 것 같았어. 그래서 꾹 참고 있다가 여기 오는 내내, 그리고 기다리는 내내 계속 울었어. 나도 안 헤어졌으면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계속 났어. 그때는 그려지지 않았던 모습이 헤어지고 나니 그려져서 괜히 슬펐나 봐. 지금 두 달도 넘었는데 왜 갑자기 이럴까. 진짜 앞뒤 맥락 없다, 그치.'


생각만 하던 말을 내뱉고 나니 두 시간 동안 혼자 그렇게 애써도 진정이 안되던 마음이 진정이 됐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직 그 사람이랑 헤어진 게 슬플 수 있지. 한참 좋을 때 헤어져서 더 그럴 수 있지. 그 사람이랑 결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니 그런 거지. 가족들이랑 있으면서 갑자기 그게 생각났을 수 있지.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당연히 날 수 있지. 정말 그 사람을 좋아했던 거지. 완전 앞뒤 맥락 있는데, 왜 그래.'


다음날 시차 때문에 이른 새벽 눈이 떠졌다. 미국에서는 한 달에 15불을 내고 헬스장을 다니는데, 2만 원을 내고 헬스장 하루 이용권을 끊었다. 2만 원이 아깝지 않게 열심히 달렸다 두 달이 지났지만, 내 이별극복기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그럴 수 있지. 완전  그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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