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달리기의 상관관계
달리다 보면 숨이 가빠오고 몸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온다. 심장 박동수가 180을 넘어섰다는 신호다. 그때부턴 1분, 1초가 슬로모션으로 지나간다. 손목에 찬 애플워치를 보며 얼마큼 달렸는지, 목표한 거리만큼 얼마큼 남았는지 계속 확인하게 된다. 이 고비를 넘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달리기에 쏠려 있는 집중을 다른 데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른 생각에 깊이 빠지기 같은. 하염없이 생각의 파도에 휩쓸리다 보면 10분이 후딱, 1마일이 후딱 지나가있다. 바로 이별과 달리기의 묘한 상관관계가 성립되는 지점이다.
신기록을 낸 그날 이후로 나는 꾸준히 달리러 나갔다. 이별 플레이리스트를 무한 반복하며 열심히 달렸다. 일주일 7일 중 5일은 달렸고, 3일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달렸다. 이별을 한 번이라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왜 이 세상에 가슴 절절한 이별 노래가 수백만 개, 수천만 개씩이나 존재하는지 알 거다. 슬플 땐 공감이 제일 큰 위로이기 때문에. 그 이유는 제각기 달라도 겪는 감정의 물결은 비슷하기 때문에. 가사 한 소절에도 공감되고, 공감되니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공감받는다고 느끼는 것 아닐까.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스무 곡 정도가 저장되어 있었는데, 유독 와닿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가수 김승민 씨가 부른 '하나, 둘'이라는 곡이다.
'너와 데이트하던 별거 없던 수성 호수 공원에
널 추억하며 담배를 하나 물고 걸어 다녀 거리에
비가 올 때면 투명한 그 조그마한 우산에
붙어있던 게 이제 와서야 나 그리워져'
담배는 입에 댄 적도 없고, 수성 호수 공원은 들어본 적도 없다. 비가 올 때 그와 우산을 나눠 쓴 적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나는 이제 와서야 그 모든 게 그립다는 김승민 씨의 마음을 너무 알 것 같아 눈물이 퐁퐁 났다. 사소한 일상을 나누던 문자,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보던 영화, 추운 날 밤 손 꼭 잡고 걷던 공원. 이제와 그리운 것들이 끝도 없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그새 미화가 된 걸까. 그와 데이트했던 별거 없던 이 공원에서 그를 추억하며 달리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슬픔이란 감정을, 이별 노래와 함께, 달리기라는 형태로 분출하고 있는 이 상황이 스스로도 납득되진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슬픔은 달리기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고 있었고, 혼자 몰래 우는 것 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던 무언가가 달래지고 있었다.
이 묘한 상관관계의 성립으로,
내 심장과 폐는 4마일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