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해도 행복했지
'Strava'라는 운동 기록 어플이 있다. 나이키에서 'Nike Run Club'을 열심히 마케팅했음에도 그에겐 먹히지 않았던 건지, 그는 이 어플을 사용했다. 그를 따라 달리기를 시작만큼 나 또한 자연스럽게 이 어플을 사용했다. 어떤 운동을, 얼마큼, 어떤 페이스로 했는지 기록하고 필요에 따라 사진이나 설명 추가도 가능했다. 여느 소셜미디어처럼 계정을 팔로우하면 하트도 누르고 댓글도 달 수 있어 그 재미가 쏠쏠했다.
무심한 척했지만 그의 계정에 자주 들락날락했다. 평소 얼마큼 달리는지, 누가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다른 소셜미디어 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는 그의 사생활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이 친구랑 같이 자주 달리네, 친한가 보다.‘등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그와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하고부터는 아침 굿모닝 인사처럼 당연해진 게 하나 있었다. “나 달리고 올게”라는 연락과 오늘 이만큼이나 열심히 달렸다는 자랑 아닌 자랑. 자랑보다는 칭찬해 달라는, 칭찬보다는 사실 자기 덕분에 내가 달리게 됐다는 걸 뿌듯해하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는 열심히 달렸고 열심히 연애했다.
달리기만큼 그는 요리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필링을 수비드 방식으로 익힌 치즈케이크를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오늘 내 생일이니깐, 케이크 만들어줄게” 그의 생일 아침, 본인 생일을 맞아 치즈케이크를 만들어서 가져다주겠다는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귀여운 연락을 받았다. (특별하면서도 특이한 이런 면이 참 좋았다.) 데이트 전 달리러 나갔고 그날 포스팅 제목을 'cheesecake'로 바꿔 올렸다. 이따 오후에 치즈케이크를 잔뜩 먹을 테니 미리 칼로리를 태우겠다는 의지도 표현할 겸, 동기부여도 좀 더 끌어올릴 겸.
그날 이후로 내 포스팅 제목엔 다양한 음식이 등장했다. 어떤 날은 치킨, 어떤 날은 버블티, 어떤 날은 돈가스랑 떡볶이. 내 포스팅을 보고 오늘 내가 뭘 먹고 싶어 하는지 혹은 뭘 먹었는지 맞추는 그의 모습이 좋았고, 함께 치킨을 먹고 달리기를 한 날이면 나란히 'chicken'이란 제목으로 포스팅을 하는 우리 모습도 좋았다.
달리기가 익숙해질 때쯤, 내 첫 번째 목표는 쉬지 않고 3.1마일(=5km)을 달리는 거였다. 몇 번 시도했으나 2.5마일, 30분쯤 달리면 꼭 고비가 찾아왔다. 성공하는 날 스스로에게 무언갈 선물하겠다는 다짐이 절로 나왔다. 어느 휴무날 아침, 달리기를 하러 일찍 집을 나섰다. 저녁엔 그와 데이트가 약속돼 있었다. 찬 공기에 몸을 웅크리다가도, 들이마실 때 느껴지는 개운함 때문에 아침 달리기에 푹 빠져있던 때이기도 했다.
그날은 매번 고비였던 30분이 넘어가고도 왠지 조금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3.1마일 쉬지 않고 달리기’에 성공했다. 약 38분간의 달리기를 마치고 그날 포스팅 제목을 'tiramisu'로 변경했다. 갖고 싶었던 신발과 그렇게 좋아하는 돈가스를 뒤로하고 나는 나에게 티라미수를 선물하기로 했다. 고소하고 달달한 마스카포네 치즈와 쌉쌀한 커피 향 가득한 티라미수가 너무 먹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저녁 식사 후 후식으로 티라미수를 먹었다. 잘 갔을까 걱정했던 시그널이 무사히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