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달리기였나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건 2년 전 가을이었다. 데이팅 어플로 만나 잘 돼 가던 친구가 있었고 그의 취미는 무려 달리기였다.
한국에선 데이팅 어플을 ‘원나잇‘만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우리 가족도 그랬다. 당연히 나를 응원하리라 믿었던 언니조차 말렸다. 어떤 사람일 줄 알고 만나냐고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데이팅 어플은 간절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코로나로 사람 만나기가 어려워지자 진지한 만남을 꿈꾸며 어플을 다운 받는 사람이 늘어났다. 물론 가벼운 만남을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는 쪽이 더 많았다. 주변에서 온라인으로 시작해 결혼까지 이어지는 커플이 계속 생겨났다. 나 또한 그런 식으로 연애를 시작한 친구 권유에 마음이 혹했다. 친구 커플 연애를 보니 남들과 다르지 않게 평범해 보였다. 용기를 냈다. 어플을 다운받았다.
승무원이라는 직업 특성상 비행을 가면 3-4일은 집을 떠나 있는다. 그래서 쉬는 날 부지런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많이 만나야 확률이 올라간다는 믿음 하에, 점심과 저녁 연달아 약속을 잡는 열정을 불태웠다.
한 달이 지났다. 반복되는 자기소개에 지쳐갔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 끊임없이 나를 설명해야 했다. 나랑은 안 맞는 방법 같았다. 그러던 차에 첫 만남에 거절했던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밥 한 번만 더 먹자고, 마지막 기회를 달라나 뭐라나.
어플을 통해 만나면 상대방이 여러 명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게 보인다. 저울질하고 간 보고. 내일 만나기로 한 사람이 더 괜찮을지도 모르니 오늘 만나는 이 사람에게 올인하진 말자, 뭐 이런 심리다. 어쩔 수 없는 세팅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니 거절당한 후 다시 붙잡는 용기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번 더 만났다. 그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꿈꾸던 이상형과 다르다는 사실은 언제부턴가 상관 없어졌다. 당시 나는 일주일 서너 번 헬스장에 출석하는 나름 열심히 운동하는 여성이었다. 그런 여자 앞에서 그는 '달리기가 우리 몸에 주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나도 알고 있다고, 나도 공감한다고 티를 내고 싶었다. 그래서 냅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1분도 힘들었다. 달리기만 시작하면 심장이 아팠다. 온몸이 간질거리고 화끈거렸다. 심장 박동수는 180을 넘어 190을 찍었다. 그는 거의 매일 4~5마일씩 달렸다. 함께 달리기엔 한참 부족했다. 이제는 전 남친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는 좋은 달리기 코치이자 격려자였다. 내가 혼자 달릴 때는 얼마나 짧든 느리든 상관없이 무조건 응원과 칭찬을 보내줬다. 함께 달리는 날은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희열을 맛 보여줬다.
'이번에도 아니었어.' 처음부터 너무 빨리 달렸던 탓일까.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었나. 내 짝꿍을 만났구나라는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그렇게 약 5개월 굵고 짧은 연애를 뒤로한 채 나는 내 인생 세 번째 이별을 맞았다. 헤어짐은 언제나 힘들다. 하지만 이전 연애에 비해 상당히 짧게 만났으니 금방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만난 기간 절반만큼 힘들면 된다.’ 내 이별 공식이다. 나는 두 달 정도 힘들면 되겠다고 계산도 해뒀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우리네 인생. 나는 이별 후폭풍을 꽤나 세게 맞았다. 꽤나 오래.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믿음 빼고는 이 폭풍을 잠재울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좋아했던, 그리고 그런 그를 좋아해서 나도 좋아한, 달리기를 미친 듯이 했다. 달리기 덕분에 '이별 극복'인지 이별 덕분에 '달리기'인지 애매한 이야기. 이별과 달리기, 그 묘한 상관관계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