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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Nov 24. 2018

문장과 문장의 연결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문장 하나 하나를 반듯하게 써야 함은 물론이다. 맞춤법에 맞아야 함은 물론이고 문맥에 맞는 단어를 골라서 단어들끼리 서로 잘 호응이 되도록 문장을 구성해야 한다. 문법을 지켜야 하고 문장의 의미가 모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각 문장이 문법적이고 의미가 선명한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 이상의 것이 있다. 글을 쓸 때 한 문장만으로 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장과 문장을 연결해서 글을 구성한다. 따라서 문장과 문장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경우는 다양하다. 어떤 문장이든 그 앞에 나오는 문장과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앞의 문장과 도무지 관계 없는 문장이 나오면 독자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앞 문장과 뒤 문장 사이의 관계도 여러 가지다. 뒤 문장은 앞 문장을 부연 설명할 수도 있고 앞 문장을 토대로 어떤 결론에 이르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뒤 문장이 앞 문장과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거나 그 반대로 논리적으로 도저히 연결될 수 없는 엉뚱한 내용이 나오면 독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문장과 문장은 건물의 계단처럼 차근차근 무리 없이 이어질 때에 무난하게 이해된다. 높은 곳을 올라가야 하는데 한 계단의 높이가 발을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높으면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고 반대로 계단이 아예 없어도 역시 그 자리에서 머무를 뿐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음 예에서 마지막 문장인 '어제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4차 청문회가 교육계에 던진 뼈아픈 과제다.'는 앞의 세 문장과 도무지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이화여대 최경희 전 총장과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남궁곤 전 입학처장은 입시 부정으로 결론 난 교육부의 정유라 감사 결과까지 전면 부인했다. 참회는커녕 특검 수사를 염두에 둔 듯 자신들의 방어에만 급급했다. 도무지 학생들에게 사회 정의와 교육의 가치를 가르쳐온 교육자 면모를 찾기 어려웠다. 어제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4차 청문회가 교육계에 던진 뼈아픈 과제다.     


    '어제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4차 청문회가 교육계에 던진 뼈아픈 과제다.'는 그 자체로 주어가 없는 문장이다. 무엇이 '4차 청문회가 교육계에 던진 뼈아픈 과제'라는 것인지가 나타나 있지 않다. 그 주어가 앞에 나와 있다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앞의 문장들에는 '4차 청문회가 교육계에 던진 뼈아픈 과제'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화여대 전 총장, 학장, 처장이 청문회에서 보인 실망스런 행동들이 지적됐을 뿐이다. 따라서 '어제 최순실 국정 농단 국정조사 4차 청문회가 교육계에 던진 뼈아픈 과제다.'는 앞에 나온 문장들과 의미상 잘 연결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다음 예는 세 문장이 차례로 연결되었다. 그런데 세번째 문장이 그 앞의 두 문장과 의미상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환경부는 80% 이상을 중국 탓으로 돌리지만 외국 전문가들은 20% 정도로 분석한다. 말로만 외쳐온 한·중 환경외교가 겉돈 탓이다.     


    이 글은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환경부는 미세먼지의 80% 이상을 중국 탓으로 보고 있는 데 반해 외국 전문가들은 중국 탓이 20% 정도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말로만 외쳐온 한·중 환경외교가 겉돈 탓이다.'라고 했다. 중국 탓이 80% 이상이라는 환경부의 분석이 맞는지 20% 정도로 보는 외국 전문가들의 분석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문맥상 외국 전문가들의 분석을 중시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세먼지 발생의 20% 정도가 중국 요인인 게 '한·중 환경외교가 겉돈' 것과 무슨 상관인가. 도무지 연관이 맺어지지 않는다. 대중 환경외교를 잘못한 게 문제가 아니고 발생 원인을 잘못 파악한 한국 정부 당국의 착오와 무능이 문제라 해야 할 대목이다. 문장의 연결이 논리적이지 않으면 글을 이해하기 어렵다. 동의할 수는 물론 없다. '중국 탓만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해야 오히려 앞뒤 연결이 자연스럽다.


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환경부는 80% 이상을 중국 탓으로 돌리지만 외국 전문가들은 20% 정도로 분석한다. 중국 탓만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은 앞뒤 문장들과 의미상 동떨어진 문장이 중간에 들어가 있어 독자의 이해를 가로막는 예다.


일자리위는 출범 이후 매달 한 차례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지만 1년간 모두 5차례 회의를 여는 데 그쳤다. 이조차도 정부와 경영계, 노동계 등 각계 위원들이 참석해 각자 입장만 발표하다 보니 심도 있는 토론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일자리 100일 플랜’을 비롯해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 등 그럴듯한 제목의 정책을 발표했지만 세금으로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만든 것 외에 규제완화 분야에서는 사실상 성과가 전무하다.

질 좋은 일자리는 결국 제조업과 고부가가치의 서비스업에서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어제 발표한 ‘서울 및 광역시별 청년고용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이 증가한 서울 부산 대구와 달리 대전과 광주는 지난 5년간 제조업 생산이 연평균 3% 이상 증가하면서 청년실업률도 하락했다. 대책도 못 내놓고 회의조차 제대로 못 여는 일자리위원회야말로 현 정부 일자리 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업무지시 1호’ 일자리委의 한심한 1년'이란 제목의 사설 마지막 두 단락이다.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일자리위원회가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질 좋은 일자리는 결국 제조업과 고부가가치의 서비스업에서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어제 발표한 ‘서울 및 광역시별 청년고용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이 증가한 서울 부산 대구와 달리 대전과 광주는 지난 5년간 제조업 생산이 연평균 3% 이상 증가하면서 청년실업률도 하락했다.'는 앞뒤 문맥과 연관성이 희박한 내용이다. 특히 두번째 문장인 '현대경제연구원이 어제 발표한 ‘서울 및 광역시별 청년고용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이 증가한 서울 부산 대구와 달리 대전과 광주는 지난 5년간 제조업 생산이 연평균 3% 이상 증가하면서 청년실업률도 하락했다.'는 왜 들어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청년실업률이 증가한 서울, 부산, 대구와 달리 대전과 광주의 청년실업률이 하락한 것이 일자리위원회와 어떤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청년실업률이 하락했다는 것은 정부의 정책이 성과를 거두었다는 뜻이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비판하는 이 글의 논지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앞뒤 문맥과 맞지 않는 내용은 없어야 마땅하다. 다음은 앞뒤와 무관한 두 문장을 빼고 두 단락을 하나로 연결시킨 것으로 문장들의 연결이 매끄럽다.     


일자리위는 출범 이후 매달 한 차례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지만 1년간 모두 5차례 회의를 여는 데 그쳤다. 이조차도 정부와 경영계, 노동계 등 각계 위원들이 참석해 각자 입장만 발표하다 보니 심도 있는 토론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일자리 100일 플랜’을 비롯해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 등 그럴듯한 제목의 정책을 발표했지만 세금으로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만든 것 외에 규제완화 분야에서는 사실상 성과가 전무하다. 대책도 못 내놓고 회의조차 제대로 못 여는 일자리위원회야말로 현 정부 일자리 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문장들 사이의 순서가 반듯하지 않고 뒤엉킨 경우도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다음은 그런 예다.


한국은 아직도 20년 전 1997년 외환위기의 긴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해 대한민국호가 침몰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세계는 그렇지 않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일본 경제를 포함해 세계 경제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고 했다. 더구나 한국은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기 시작하는 ‘인구절벽’ 시대에 들어서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이 글은 '내가 나라다'라는 제목의 논설 한 단락인데 네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네번째 문장은 앞 문장과 의미상 아주 동떨어져 있다. 특히 '더구나'라는 말이 나온 이상 세번째 문장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이 나와야 마땅했다. 그런데 세번째 문장은 세계 경제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네번째 문장이 '더구나'로 시작한 이상 세계 경제가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음을 강조하거나 뒷받침해주는 내용이 나와야 했지만 예상과 달리 한국의 사정이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따라서 네번째 문장은 두번째 문장 위치에 와야 했다. 네번째 문장을 두번째 위치로 옮길 때 세번째 문장 첫머리는 '이렇게'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한국은 사정이 어렵지만 세계 경제는 좋아질 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국은 아직도 20년 전 1997년 외환위기의 긴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한국은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기 시작하는 ‘인구절벽’ 시대에 들어서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이렇게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해 대한민국호가 침몰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세계는 그렇지 않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일본 경제를 포함해 세계 경제 전체가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고 했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은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치에 닿아야 한다. 그러나 다음 예는 전혀 그렇지 않다.


김정은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한 것 자체가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켜 보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남북대화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대북 제재였다.     


    두 문장은 각각 '김정은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한 것 자체가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켜 보려는 것이다. '와 '지금의 남북대화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대북 제재였다.'이고 그 두 문장은 '다시 말해'로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문장이야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김정은이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한 것이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또 그동안 대북 제재를 했기 때문에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한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문제는 '다시 말해'이다. 김정은의 평창올림픽 참가 결정이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켜 보려는 의도에서 나왔다는 것이 어떻게 해서 지금의 남북대화를 가능케 한 것이 대북 제재라는 것인가. 두 문장은 '다시 말해'로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남북대화가 가능해진 것은 대북 제재 때문이었지만 오히려 남북대화를 이용해서 김정은은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키려 한다고 해야 논리적으로 수긍이 된다. 문장과 문장은 수긍할 수 있도록 연결해야 한다. 아래에서와 같이 고쳐 쓸 때 비로소 논리가 수긍이 된다.     


지금의 남북대화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대북 제재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오히려 평창올림픽 참가를 결정함으로써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켜 보려고 한다.           

    

    다음 예는 문장과 문장의 순서는 제대로 되었으나 표현의 강도가 적절하지 않아 의아함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다.


북한 정권의 호전성은 익히 아는 바이나 이번 김정남 암살처럼 외국에서 그것도 인파가 붐비는 공항에서 야밤도 아닌 백주에 테러를 가하는 김정은 체제의 잔학성에 우리는 크게 놀라고 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진상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지켜봐야 하지만 이제까지 정황으로 보아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김정남 독살에 관한 신문 사설이다. 두 문장 중에서 앞 문장은 김정남이 죽은 것이 암살이며 김정은 체제의 잔학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이제까지 정황으로 보아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하였다.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것은 가능성이 크다는 것일 뿐 단언할 만큼 확실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앞 문장에서 북한 정권이 저지른 짓임을 확신하는 말을 하고서 바로 이어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하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가 아니라 '북한의 소행이 틀림없어 보인다'나 '북한의 소행임이 명백하다'라고 해야 무리가 없다.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를 쓰려면 앞에서 '김정은 체제의 잔학성에 크게 놀라고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표현은 쓰지 말아야 했다. 앞에서는 단정적으로 말하고 뒤에서는 단정을 거두고 유보적인 추정의 태도를 보이면 독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건의 진상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를 지켜봐야 하지만 이제까지 정황으로 보아 북한의 소행이 틀림없어 보인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연결 고리가 있다. '그러나', '그러므로', '그래서', '따라서', '그렇기 때문에' 등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연결 고리도 있지만 그런 고리가 없는 경우에도 각 문장이 지닌 의미 때문에 어느 문장이 어느 문장 다음에 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어떤 문단에 속하는 여러 문장들을 카드 한 장에 한 문장씩 적고 카드를 흐트러뜨렸다 치자. 카드를 순서에 맞게 차례대로 모아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같은 순서대로 카드를 모으게 된다. 어떤 문장이 문단의 첫머리에 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다음 문장은 뭐가 와야 하는지, 맨 마지막 문장은 무엇이 와야 하는지 대체로 같은 답을 찾아내게 된다. 이는 문장과 문장의 연결에는 어떤 규칙이 있음을 보여준다. 문장을 이루는 문장성분들의 연결도 문법이라는 규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지만 문장과 문장의 연결도 역시 보이지 않는 규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글이든 말이든 사람은 그것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반듯한 글은 의사소통을 막힘 없게 하지만 명료하지 않은 글은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고 더디게 한다. 명료하지 않은 글을 읽을 때 독자는 답답함을 느낀다. 읽는 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소통의 매개인 말과 글이 명료해야 한다. 반듯한 글쓰기는 오랜 훈련의 결과로 이룰 수 있지 단시일 안에 성취할 수 없다. 그리고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없다. 부단히 쓰고 또 쓴 끝에 점점 더 세련된 글쓰기를 하게 된다. 

    사람마다 글쓰기의 수준, 숙련된 정도가 다르고 누구나 지금보다 좀 더 나은 글쓰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 내 글을 남에게 읽히고 남들의 반응을 들어볼 기회는 오늘날 넘쳐난다. 블로그는 대표적인 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개인 블로그든 브런치든 글쓰기의 장을 통해 자기 생각을 알리고 정보를 공유하며 상호 토론을 활발히 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어가 더욱 편리한 도구가 되고 한국어를 통한 소통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수한 문자인 한글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리가 어느 언어에도 뒤지지 않는, 아름답고 명료한 한국어를 가질 것이냐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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