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밭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중 Oct 09. 2019

한글날에

훈민정음 반포 573돌을 맞는다.

여느 한글날과 마찬가지로 이 기쁜 국경일을 맞아  언론은 한글 창제를 기리고 한글 경시를 질타한다.

신문과 방송엔 한글 관련 뉴스가 넘쳐난다.

며칠 전 연합뉴스는 특파원이 인도네시아까지 가서 찌아찌아족이 여전히 한글을 활발히 쓰고 한국어를 열심히 배운다고 보도했다.


과연 한글은 우리의 자랑이고 한글 덕택에 지금 한국은 비록 나라는 작아도 IT강국으로 세계에 우뚝 서 있다. 

한글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처럼 문맹률이 거의 0에 가깝고 높은 교육 수준을 지닐 수 있었을까.

한글이 없었다면 베트남처럼 자국어를 로마자를 빌려서 표기할지도 모르고 필리핀처럼 아예 자국어(타갈로그어)는 뒷전에 밀리고 영어를 주로 쓰면서 살게 됐을지도 모른다.

새삼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드신 세종대왕께 감사하게 된다.


그러나 마냥 기뻐만 할 수는 없는 게 과연 후손인 우리가 한글을 제대로 활용해서 쓰고 있는지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을 칭송할 뿐, 그리고 한자 혼용을 버리고 한글 전용을 하고 있음에 만족할 뿐, 한글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살피고 있는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라는 글자를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저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에 없다는 이유로, 일제강점기 국어학자들이 만든 맞춤법에 그 글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를 쓸 생각을 않는다.


는 '열중 쉬어'를 줄여서 '열중 수ㅕ'라고 발음할 때 내는 소리다.

'사귀어', '할퀴어', '야위어'를 줄여서 말할 때도 '구ㅕ', '쿠ㅕ', '우ㅕ'라는 소리를 우리는 발음한다.

즉 준말에서 발음하는 소리다.

어쨌거나 분명히 한 음절로 발음되는 모음이니 한 음절로 적을 수도 있어야 하지만 

그런 글자가 없다면서 적지 않는다.


국어학자들이  

를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 동안 언중들 사이에는 

를 쓰는 사람이 나타났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의 국도변에 있는 한 간편이 이를 웅변한다. 



국어만 연구하고 사는 국어학자들도 못하는 일을 평범한 민박집 주인이 하고 있다.

'수ㅕ'라고 한 음절로 발음하니 글자로 한 음절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정당하고 정확한 판단이요 발상이다.


지금 한글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과 여러모로 달라졌다.

순경음 ㅂ, 반치음, 여린 히읗, 아래아 같은 글자는 몇 백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필요가 없게 되어 지금 쓰이지 않는다.

'ㅜㅕ'가 빠져 있음을 알았다면 쓰도록 해주는 게 학자의 도리요 의무다.

민박집 주인이 알아서 쓰고 있는데 학자들은 두 손을 놓고 있다.


한글날을 국경일, 공휴일로만 해 놓으면 다인가.

아닐 것이다.


불편하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

훈민정음 반포 당시 정인지는 새 문자가 바람소리, 학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적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한글로 우리 사람이 내는 소리를 적을 수 없다니 어인 일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국민을 이길 순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