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기에는 조선이었다
12월 12일 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보통 12.12 사태를 떠올릴 것이다. 1979년 12월 12일 일단의 군인들이 대통령 재가도 받지 않고 계엄사령관을 체포하며 일으킨 군사반란 사건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인 1946년 12월 12일에도 우리나라에 뜻깊은 일이 있었다. 미군정기였던 그날 남조선과도입법의원(南朝鮮過渡立法議院) 개원식이 중앙청에서 있었다.
우리는 보통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라 하면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5.10 선거를 떠올리지만 그 2년 전에 이미 선거가 있었다. 미군정은 정부를 이양하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으로 과도입법의원을 구성하기로 하고 45명은 미군정장관이 직접 임명하고, 45명은 민선 입법의원을 뽑기로 하고 1946년 10월 하순에 전국에서 입법의원 선거를 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당선된 이로 김성수, 장덕수, 김도연 등이 있다.
그러나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1년 반 정도 지속되었을 뿐이고 1948년 5월 제대로 된 총선거가 실시되고 해산했다. 1년 반 동안 11개의 법률을 만들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미군정이 직접 공포한 법령은 80건이 넘는데 말이다. 그냥 흉내만 낸 정도에 그친 입법기관이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의의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 이름에 쓰인 남조선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오늘날 북은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하고 우리는 대한민국이라 일컫는다. 줄여서 한국이 더 널리 쓰인다. 한국에서는 남조선이란 말을 극구 꺼리고 북에서는 북한이란 말을 극구 싫어한다. 이런 괴리가 언제 비롯되었나.
조선(朝鮮)은 태조 이성계가 새 나라를 세우고 이듬해인 1393년 확정한 이름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의 까마득한 후손인 고종이 1897년 10월 국호를 바꾼다. 왕국에서 황제국으로 격상시키면서 대한국(大韓國)이라 이름을 새로 쓰기로 했다. 고종은 대한국황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대한국은 무너지고 일본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일본은 대한국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식민지로 삼은 이땅을 조선이라 불렀다. 학교에서는 조선어를 가르쳤다. 국어는 일본어였다. 그나마 1930년대 후반 들어 조선어를 못 쓰게 했다. 조선어말살정책을 폈다.
국내는 그렇고 1919년 3.1운동 이후 4월에 중국 상해에서 성립한 임시정부는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됐다. 1945년 광복되기까지 비록 중국을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했지만 대한민국임시정부였다.
그런데 웬 일인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미군이 한반도 남쪽에 진주했다. 미군정 시기에 '한국'은 없었고 '남조선'만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쓰였던 조선을 그대로 쓴 것이다. 해외에서 가열차게 조국 독립을 위해 투쟁한 임시정부 인사들은 대한민국을 써왔는데 미군정에서는 남조선을 썼으니 지배의 주체만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조선은 그대로였다. 이것이 1946년 12월 12일 개원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 반영돼 있다.
물론 1948년 7월 17일 국회가 헌법을 공포했을 때는 국호가 대한민국이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줄곧 대한민국이다. 다만 미군정 시기에 일제에 이어 계속 조선을 써 왔음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고종이 1897년 대한국의 성립을 선포했을 때 그 뜻은 마한, 진한, 변한의 韓을 계승한 국가임을 말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한국이 조선보다 역사가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