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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유토피아

by 김세중

설날은 영화관에 가서 건국전쟁을 보았고 오늘은 비욘드 유토피아를 보고 왔다. 다큐멘터리에 자꾸만 끌린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2023년 작품으로 미국 감독 매들라인 개빈의 연출 작품이다. 그러나 출연자들은 모두 한국사람들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록물이지 재연은 없다. 국경을 넘는 필사의 탈출 장면을 제작진이 동행 촬영했다니 얼마나 힘든 제작이었을까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이 영화에 두 키워드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브로커굴라그다. 탈북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안 된단다.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단다. 신실한 브로커도 있겠지만 약속을 저버리는 악덕 브로커도 있음은 물론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런 브로커가 나왔다.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탈북민들을 골탕먹이는...


굴라그는 소련 시대 강제노동수용소를 가리키는 러시아어다. 그게 영어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고 아직 한국어사전에는 없다. 탈북을 시도하다 잡히면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가는 게 보통이란다. 일단 그리고 들어가면 인생은 끝장났다 봐야 하고... 영화에서 강제노동수용소의 모습이 조금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림을 그려 처리했다. 요덕수용소가 대표적인 굴라그다.


영화를 보면서 동남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 관광 가는 한국인들이 엄청나게 많다. 한국인들은 이국적인 풍경, 싼 물가에 끌려 즐겨 이들 나라를 찾고 그 나라들은 쏠쏠한 외화벌이니 한국 관광객을 환영한다. 한국인들은 이들 나라에 가서 관광을 하고 쇼핑을 즐기고 골프를 하다 돌아온다. 그저 그런 줄만 알았지 탈북민들에게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은 공포의 나라란다. 이들 나라들이 북한과 이념, 체제가 같고 그래서 가까운 사이다 보니 탈북한 사실이 경찰에 들키면 북한으로 돌려보내진다. 태국만 다르다. 그래서 탈북민들은 라오스에서 메콩강을 건너 태국에 들어서고서야 비로소 공포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영화 끝 부분에서 한 탈북민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집집마다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걸어놓고 있는데 행여 사진에 먼지가 쌓여 있으면 처벌을 받으니 늘 깔끔히 청소한다는 이야기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어 별로 새롭지 않다. 그런데 비료가 부족해서 당국이 주민들에게 똥을 내라고 강제하고 그래서 똥을 수거해 바치느라 곤욕을 치른다는 설명을 듣고는 찡했다. 수세식 화장실이 없다는 얘기 아닌가.


17년 전 여름 개성에 한나절 다녀온 일이 있다. 차창 밖으로만 시내 풍경을 볼 수밖에 없었지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듯했었다. 오늘 <비욘드 유토피아>를 보고 새삼 북의 실정을 그려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오늘도 장마당에 나가 무엇을 팔고 있을까. 평양에 사는 선택받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주민들이 북녘 곳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유토피아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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