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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단어 선택이 아쉽다

by 김세중

국토기본법이라는 법이 있다. 2002년 2월 제정되었다. 국토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지향해야 할 이념과 기본 방향을 명시한 법이다. 국토는 국가를 이루는 핵심적 요소이므로 대단히 중요한 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법의 조문 곳곳에 세련되거나 매끄럽지 못한 단어 선택이 눈에 띈다. 먼저 제1조를 보자.


제1조(목적) 이 법은 국토에 관한 계획 및 정책의 수립ㆍ시행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토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의 복리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국토의 건전한 발전'이라고 했다. 국토에 대해서 '건전한 발전'이라니 조금은 의아한 느낌을 준다. '국토'와 '건전'은 조합이 자연스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국토는 건전하게 발전한다기보다 균형 있게 발전한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제2조에서는 국토가 후세에 물려줄 민족의 자산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이런 표현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급속히 국제결혼이 늘어나고 있고 다문화가 강조되고 있다.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민족'이란 말이 차츰 사라져 가고 있다. 민족이란 도대체 어느 민족을 가리키는가. 물론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한민족인 것은 사실이지만 자칫 논란의 소지가 있는 말은 피하는 것이 나아 보인다.


제2조(국토관리의 기본 이념) 국토는 모든 국민의 삶의 터전이며 후세에 물려줄 민족의 자산이므로, 국토에 관한 계획 및 정책은 개발과 환경의 조화를 바탕으로 국토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며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함으로써 국토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수립ㆍ집행하여야 한다.


제3조에는 '교류협력을 촉진시키고'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촉진시키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고 우리말샘에는 '다그쳐 빨리 나아가게 하다'라 뜻풀이한 뒤에 '규범 표기는 '촉진하다'이다'라 하고 있다. '촉진시키다'는 규범 표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촉진하다'로 충분한데 굳이 '촉진시키다'라고 할 필요가 없다.


제3조(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

③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간의 교류협력을 촉진시키고 체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지역 간의 화합과 공동 번영을 도모하여야 한다.


오히려 제4조의2에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하여'의 '향상하기'를 '향상시키기'라고 했더라면 좋았지 않나 싶다. '향상하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지만 '향상시키기'라고 하면 뜻이 더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제4조의2(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국토 여건 조성)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하여 국민 모두가 생활에 필요한 적정한 수준의 서비스 제공받을 수 있는 국토 여건을 조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생활에 필요한 적정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국토 여건을 조성하여야 한다'라는 구절에도 이의 있다. '생활에 필요한 적정한 수준의 서비스'라고 했는데 그것이 어떤 서비스인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국토에 관한 기본법으로서 기본 이념을 밝히는 것이어서 그랬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모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름지기 법률 조문은 의문이 남지 않게 완벽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섬세한 단어 선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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