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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30. 2024

'태양'을 어찌할까

態樣일 땐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지...

민법 제2편 물권의 제2장이 점유권이다. 물권에서 소유권보다 점유권이 먼저 나온다. 점유권에 관한 조항 중에서 제197조는 제목이 점유의 태양이다. 점유자는 소유의 의사선의평온하고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 제197조다. 짧은 문장이지만 사실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법률적인 문제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제197조의 제목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제197조의 제목 점유의 태양이 어떤가. 


민법

제197조(점유의 태양) ①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로 선의, 평온 및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무슨 뜻인지 떠오르는가. 아마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이게 무슨 말이지?' 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좀체 들어보지 못하는 '점유의 태양'이란 말이 민법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민법이 만들어진 1950년대로 돌아가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민법은 1958년 제정될 때 이랬다. 


第197條(占有의態樣) ①占有者는 所有의 意思로 善意, 平穩 및 公然하게 占有한 것으로 推定한다.


즉 한자로 적혔다. 1950년대에 국어의 문자 생활은 온통 국한 혼용이었다. 특히 법률은 심했다. 한자어는 죄다 한자로 적혔다. 즉 '양태'가 아니라 '態樣'로 적혔다. ''은 '모양 양'이고 ''는 '태도 태'로 '형태, 상태' 같은 말에 쓰인다. 따라서 '態樣'를 보고 무슨 뜻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모양과 형태'라는 뜻 아니겠는가.


사실 민법 제197조의 '占有의 態樣'은 일본 민법에서 따온 것이다. 해당하는 일본 민법 조문은 다음과 같다.


(占有の態様等に関する推定)

第百八十六条 占有者は、所有の意思をもって、善意で、平穏に、かつ、公然と占有をするものと推定する。


2000년대에 들어와서 한글 전용이 법조계에도 급속히 확산되었다. 2002년에 전면 개정된 민사소송법은 개정과 함께 아예 한글로 바뀌었다. 그러나 민법만큼은 한글로 개정되지 않았다. 민법이 한글로 바뀌지 않았지만 한글 전용 분위기와 함께 민법은 한글로 제공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민법 제197조의 제목은 '점유의 태양'이 되었고 한글로 적힌 '점유의 태양'은 낯설기 그지없다. 한자로 적혔을 때는 의미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한글로 적히고 보니 생소하기 그지없다.


2019년 법무부는 현대적으로 민법을 전부 새로 쓴 개정안을 제20대 국회에 제출했다. 그 개정안 제197조는 다음과 같다.


제197조(점유의 모습) ① 점유자는 소유의 의사로 평온하고 공연(公然)하게 선의로 점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占有의 態樣'을 '점유의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占有의 態樣'을 단순히 한글로 '점유의 태양'이라 옮기는 것은 오히려 의미 파악을 어렵게 한다고 보고 '점유의 모습'이라고 바꾼 것이니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민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심의되지 않았다. 제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점유의 태양'이다. 언제까지 '점유의 태양'을 안고 갈 것인가. 의미가 떠올라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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