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가 왜 어려워야 하나
누구나 날짜를 물어볼 일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지금의 연, 월, 일을 물어본다고 치자. 발음은 모두 똑같이 하겠지만 어떻게 적을지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다음 두 가지가 후보가 될 것이다. 과연 어떻게 적어야 옳을까.
(1) "오늘이 몇 년, 몇 월, 몇 일입니까?"
(2)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입니까?"
국어사전을 따른다면 정답은 (2)지 (1)이 아니다. (1)은 틀렸다. 왜냐하면 국어사전에 '며칠'이라는 단어가 올라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며칠'이 명사인 표제어로 올라 있고 그 뜻풀이 1번에 "그달의 몇째 되는 날"이라 하면서 용례로 "오늘이 며칠이지?"를 제시하고 있다. "오늘이 며칠이지?"라 용례가 제시된 걸로 보아 당연히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이지?"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래야 할까?
여기서 앞에서 제시한 예문을 다시 가져와 본다.
(1) "오늘이 몇 년, 몇 월, 몇 일입니까?"
(2)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입니까?"
나는 어문당국이 (2)를 쓰라고 국민에게 권유하고 있지만 (2)보다는 (1)을 쓰라고 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필자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왜 '몇 년', '몇 월', '몇 시', '몇 분', '몇 초', '몇 해', '몇 달', '몇 날'인데 유독 '일(日)'에 대해서만 '몇 일'은 틀리고 '며칠'로 써야 하나?
그 이유를 한글 맞춤법 제27항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며칠'은 어원이 분명하지 않아서 '몇일'이 아니라 '며칠'로 적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서술자는 '어원'을 뭐라고 생각해서 '며칠'의 어원이 분명하지 않다고 봤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며칠'의 어원이 분명하지 않나? '몇'과 '일'이 결합한 게 아니고 뭔가. '며칠'은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말이 아니라 발음이 특이한 말이다. 발음이 [며딜] 또는 [면닐]이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고 [며칠]로 나는 게 참 특이하다. 국어학자들이 보기에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그래서 발음이 특이한 걸 어원이 분명하지 않다고 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며칠'은 단어가 아니다. '몇 일'로 적어야 마땅한 두 단어다. 두 단어는 국어사전에 오를 일이 없다. 올려서는 안 된다. 단어의 표기를 규정하는 한글 맞춤법에도 당연히 언급될 일이 아니다. 두 단어의 연결인 '몇 일'의 발음이 특이하다고 해서 '며칠'이라는 한 단어로 만들고 한글 맞춤법 안에 못박아 버렸다. 그래서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입니까?" 해야지 "오늘이 몇 년, 몇 월, 몇 일입니까?"라고 쓰면 틀린 걸로 가르친다.
억지라고 생각한다. 발음은 설명이 안 되는 경우가 흔하다. '희'를 [희]가 아닌 [히]라고 발음하는 것을 무얼로 설명하나? '몇 일'도 다르지 않다. [며딜]이나 [면닐]로 발음되지 않고 [며칠]로 발음되니 '몇 일'로 적지 말고 '며칠'로 적으라는 것은 대중에게 국어는 어렵다는 느낌만 심어줄 뿐이다. "지금이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 몇 초입니까?"가 나은가, "지금이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 몇 초입니까?"가 나은가. 한글 맞춤법을 의심해 봐야 한다. 국어가 왜 어려워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