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7일(수)
해외에 나올 때면 어김없이 일찍 잠에서 깬다.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새벽에 어딜 나갔다 오지 않으면 안 된다. 7시 반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깨보니 6시 반이다. 부리나케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우선 타이베이역 일대의 지리를 좀 익혀야겠다 싶었다. 호텔을 나와서 역 쪽으로 가기 위해 육교를 건너는데 노숙자들이 여기저기에 이불을 덮고 누워 있다. 얼마나 추울까.
타이베이역은 타이베이의 중심에 위치한다. 건물은 직사각형으로 단순한 형태다. 다만 여간 넓지 않다. 1층은 사통팔달로 문이 뚫려 있다. 지하가 가관이다. 길이 수도 없이 많고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역 북쪽에는 市民大道와 鄭州路가 있다. 같은 길인데 市民大道는 자동차 전용의 고가도로이고 鄭州路는 지상의 도로이다. 고속버스터미널은 타이베이역에서 鄭州路 건너에 있다. 鄭州路는 차가 쉴새없이 지나다니니 아예 횡단보도가 없다. 지하로 오가거나 보도육교로 건너야 한다. 보통은 지하로 오간다. 타이베이역 부근의 지리를 익히기 위해 우선 지상으로 역을 한 바퀴 돌았다. 3면이 버스 정류장이었다. 남쪽 면의 M4 앞에 시티투어 2층버스 서는 곳이 있었는데 배차 간격이 너무 뜸해 놀랐다. 하루에 몇 번밖에 없었다. 나머지 한 면인 서쪽만 택시 정류장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출구가 여간 많지 않았다. M1에서 시작한 번호가 적어도 M8은 있어 보였다. M뿐이 아니었다. K도 있었고 Z도 있었다. 그리고 Y는 무려 20번 정도까지 있었다. 말하자면 타이베이역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출구가 자그마치 수십 개였다. 타이베이역에서 북쪽의 버스터미널 있는 Q스퀘어몰로는 지하로 연결돼 있었다. Q스퀘어몰은 상가였다. 11시부터 문을 연다고 씌어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Q스퀘어몰 서쪽 끝에 있는 호텔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6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5성급 호텔답게 아침 뷔페를 먹는 식당은 고급스러워 보였다. 음식 또한 다양하게 준비돼 있었다. 빵은 물론이고 밥, 죽, 만두 등등이 있었고 야채도 풍성하고 과일도 다양했다. 주스, 커피는 물론이고 아이스크림까지 있었다. 든든히 먹고 나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보도육교를 건너 지하철을 타러 갔다. 빨간색 지하철을 타고 단수이 방향으로 향했다.
미리 한국에서 공부해 오기를 젠탄역이나 스린역에서 내리면 국립고궁박물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젠탄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지하철(MRT) 역 부근에 분명히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했는데 가도 가도 잘 안 보인다. 이렇게 멀 리가 없다. 마침내 버스정류장에 이르렀지만 고궁박물관 가는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음을 알았다. 다시 역으로 되돌아갔다. 아뿔싸! 엉뚱한 방향으로 나왔기 때문에 버스정류장이 안 보였다. 다른 방향으로 나가면 역 바로 앞에 고궁박물관 가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택시가 서 있길래 택시를 탔다. 새삼 느낀다. 지도와 실제는 다르다는 것을! 지도를 익혔다고 해서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현장에 가보면 뭐가 달라도 다르다. 지도가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한다.
택시를 타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속 깊은 곳에 국립고궁박물관이 자리해 있었다. 산속에 있어 교통이 그리 편리해 보이지 않는다. 택시 내리는 곳은 아래쪽과 위쪽 두 군데였다. 아래쪽에 내려주길래 내려서 계단을 한참 걸어 올라야 했는데 오히려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남방에 온 느낌이 확 느껴지게 야자수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정면에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꽤 떨어진 곳에도 웅장한 건물이 서 있었는데 짐작키로 수장고 같은 시설이 아닌가 싶었다.
9시 50분에 지하 1층에서 도슨트와 만났다. 일행은 스무 명이었다. 이어폰을 지급받고 10시 정각에 1층으로 올라가 투어를 시작했다. 도슨트는 10년 경력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몇 가지 개괄적인 설명을 했다. 유물들은 원래 베이징의 자금성에 있었다 한다. 1925년에 자금성이 중국의 국립박물관으로 출발했단다. 올해로 100년이다.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유물을 베이징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필요가 생겼다. 자금성에 있던 유물들이 난징, 상하이를 거쳐 충칭 등으로 옮겨다니다가 다시 난징, 상하이에서 대만으로 옮겨오게 된 게 1948년 말과 1949년 초였다고. 대부분은 군함으로 실어서 대만 지룽(基隆)으로 옮겨왔는데 지룽에서는 다시 타이중으로 옮겨졌고 1965년에 타이베이의 국립고궁박물관 건물이 지어지면서 드디어 종착지에 다다랐단다. 실로 이루 말할 수 없이 험난한 여정이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만일 유물들이 자금성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이 유물들을 일본으로 약탈해 갔을까. 1948년과 1949년에 장개석이 대만으로 옮겨가지 않았다면 중국 공산당은 또 유물들을 어떻게 했을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은 중국어 이름이 國立故宮博物院이지 國立故宮博物館이 아니다. 왜 博物館이라 하지 않고 博物院이라 하나. 도슨트가 설명했다. 博物院은 소장 가치가 높은 유물들을 갖고 있는 곳이고 博物館은 꼭 그렇지만은 않고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면 뭐든 갖춘 곳이라 했다. 요컨대 대만에 박물관은 많지만 박물원은 몇 군데 안 된다고 했다. 박물원이 박물관보다 격이 높다는 얘기다. 박물관 중에서 아주 특별한 곳을 박물원이라 하는 듯싶다. 한국어에는 박물원이라는 말이 아예 없으므로 비록 중국어 이름은 國立故宮博物院이지만 한국어로는 국립고궁박물관이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아니 국립고궁박물원이라 하면 오히려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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