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집주인으로 사는 법
생애 첫 단독주택에 살기 시작한 지 8년, 8번의 여름을 넘기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삽을 쥐기 전에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요한 일조량을 가늠하지 못해 세 번이나 옮겨 심었지만 뒤쪽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수국, 죽어버린 잔디밭에 가득한 잡초, 가을에 햇빛이 잘 드는 땅을 골라 심었더니 막상 꽃피는 초봄엔 해가 들지 않아서 매년 줄어드는 튤립... 그야말로 열심히 삽질했지만 결과는 형편없었다.
잡초와 나물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올해도 작고 오동통한 돌나물이 검은흙을 비집고 올라왔다. 파무침, 오이소박이, 비빔밥...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돌나물은 어디에 들어가도 적당히 어울리는 독특한 맛을 낸다.
정확한 이름이 돌나물인지, 돗나물인지, 아니면 돈나물인지, 알 수 없는 이 풀은 3년 전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왔다. 부추, 미나리, 쑥... 불법체류자처럼 알게 모르게 한국채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뒷마당에 10인용 식탁만 한 크기의 텃밭을 만들어 비료를 섞은 흙에 가지런히 줄을 세운 배추며 열무는 충분히 자라기도 전에 벌레 먹었지만, 돌나물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어릴 때 어머니가 물김치를 해주셨던 기억에 반가워서 서너 군데 나눠 심은 내 잘못이다.
돌나물은 sedum 종류에 속한다. 시덤을 한국말로 사전을 찾아보니 '꿩의비름'이란다. 더 모르겠다. 하여간 시덤 종류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유명하다. 손가락으로 대충 뜯어 땅에 뿌리면 그 자리에서 자라 번식을 한다. 통통한 이파리로 보아 다육이랑 사촌이 아닐까 싶은 이 아이들은 날이 더워지면 잎이 길고 질겨져 언제까지 뜯어먹을 수도 없다. 분명 소중한 고향의 맛인데,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올해는 구석에 약간 남겨둔 채 대폭 걷어냈다.
그래도 민트보다는 나았다. 뒷마당의 침략자들은 대체로 뿌리로 번식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호미로 흙을 뒤집고 캐내도 어딘가에 긴 뿌리가 남아 싹을 틔운다. 이 집에 먼저 살던 베트남 사람들이 심었을듯한 민트는 한여름 모히또에 띄워 넣을 만큼만 따먹을 뿐 매년 영토가 확장하는 걸 속절없이 봐야 한다. 게다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참나물은 봄마다 한 번 먹을 만큼 잘라낸 뒤 갈아엎어도 다음 해엔 더 무성해지고, 뽑아도 뽑아도 어디선가 쑥이 고개를 내민다. '쑥대밭'이라는 말이 쑥에서 나왔다는 걸 얼마 전에야 배웠다. 그나마 그늘에서 자라는 머위는 간신히 뿌리 뽑았다... 고 생각한다. 아마도.
아파트 단지 안의 공동 텃밭 농사를 몇 년 지어봤지만, 단독주택의 뒷마당 관리는 차원이 달랐다. 첫해부터 의욕에 넘쳐 심었다가 결국 죽은 나무며 꽃이 수없이 많았고, 가져다 심는 것이 일 년생인지, 다년생인지, 해를 많이 쫴야 하는지,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지, 알아야 할 게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게 여덟 번의 봄을 지내고 나니 초보 집주인들에게 해줄 몇 가지 원칙도 생겼다.
1. 첫해는 기다림의 시간으로 삼는다.
완전히 새로 지은 집이 아니라면 전 주인이 심어 놓았을 꽃이 어디선가 솟아오를지도 모른다. 무조건 봄부터 파헤치지 않기. 어떤 식물이 어디서 자라는지, 아침에 해가 드는 곳은 어디인지 지켜볼 것. 깨끗하게 정리만 해주면서.
2. 꽃과 나무는 한 계절에 몰아 사지 않는다.
겨울이 지나고 다가온 봄이 반갑다고 마당에 심을 꽃을 가득 사 오면 여름에 피는 꽃이 없는 정원이 되어버린다. 이른 봄부터 시작해서 가을까지 어느 계절에 어떤 꽃이 피는지 살펴보자. 동네 산책을 다니면서 다른 집들은 어떤 식물을 심는지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웃사람들이 유독 많이 심는 꽃이 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3. 구조물을 활용하자.
돌 하나에도 가격이 있다는 사실을 주택으로 이사 와서야 깨달았다. 장식용이든, 비탈진 마당 때문에 필요한 것이든, 디딤돌 하나에도 돈이 든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런데 한두 개가 필요한 게 아니라서 돈이 꽤 들어간다. 무지한 상태로 정원관리를 시작한 나는, 차라리 처음에 조경업체 서비스를 이용했더라면 오히려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관리가 편했을 거라는 후회를 한다.
시내에 넉넉한 크기의 마당을 가지게 된 건 따지고 보면 캐나다 이민 덕이다. 잡초를 뽑고, 흙을 갈아엎고, 가지를 치고, 낙엽을 치우고... 겨울이면 쌓이는 눈.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만큼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용감하게 시작한 가드닝은 열심히 일한 대가를 매년 정직하게 내놓았다. 그런데 지난 2-3년은 초보농부가 일이 바빠 방치해 두었더니, 올해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가장 기본이고 어려운 일, 바로 청소를 시작했다. 개미약을 놓고, 말벌이 집을 짓지 않게 가짜 말벌집을 달았다. 잡초 투성이의 뒷마당을 덮을 검은색 커버를 준비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 2024년 봄에 썼던 글입니다. 이제야 내놓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