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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지혜 Apr 19. 2024

몬트리올에서 먹는 프랑스 시골빵

캐나다 백수 6주 차의 기록

빵집에 일하는 사람들은 존경스럽다. 남들은 출근준비로 바쁜 이른 아침, 쓸데없이 일찍 눈이 떠져 산책 삼아 찾아가 보니 이미 진열대 가득한 빵을 내어놓고 문을 열었다. 바삭하고 말랑하고 가루가 솔솔 떨어지는, 크고 작은 빵들은 탐스러웠다. 어릴 때 롯데백화점 지하에 문을 열었던 빵집의 이름은 블랑제리(Boulangerie)였다. 그게 다름 아닌 '빵집'이라는 뜻이라는 건 몬트리올에 살면서 알게 됐다. (그런데 사실은 블랑제리가 아니라 '불랑주리'가 맞다는 것도) 평범한 네모난 '식빵' 말고도, 마치 커다란 포도송이 같이 생긴 빵을 팔았는데 나는 그 빵 하나로 롯데백화점이 이국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래서일까, 서양 사회에 산지 이십 년이 넘은 지금도 빵집은 내게 이국적인 공간이다.


빵을 사러 가면 꼭 영어보다는 프랑스어로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일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불어사용자들이기도 하고, 어쩐지 '빵은 역시 프랑스지' 하는 느낌이 들어 불어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런데 오늘은 빵이름이 어려워 버벅거리느라 불어사용자인 척하는데 실패했다. 갈색머리의 날씬하고 젊은 아가씨가 다시 쳐다보더니 '슬라이스?(잘라드려요?)'라고 묻길래 호기 있게 필요 없다고 답했다. (그때는 이게 그렇게 단단한 빵인지 몰랐다) 점원은 계산을 마치고 영수증을 주며 "Merci!"라고 했다가 얼른 실수했다는 듯이 'Thank you!"라고 인사를 한다. 나는 몬트리올에서 오래 산 사람이고 불어가 아주 유창하지는 않지만 꽤 알아들으며, 누구나 'Merci'가 감사인사인 거는 안다고 붙들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좋은 하루 보내라고 해주고 나왔다. 살짝 억울했다.


Miche campagnarde, 둥근 시골빵이라는 뜻이다. '시골빵'이라는 게 이름인 것도 신기한데 작은 사이즈로 샀는데도 제법 컸다. 혹시 레미제라블의 장 발장이 훔쳤다가 감옥살이를 하게 된 그 빵일까? 싶어 찾아봤는데 심증만 있고 검증은 못 했다. 수세기 동안 프랑스 여러 마을에서 오븐이 열리는 날이면, 각자 가정에서 가져오는 커다란 반죽을 넣어 굽는 빵이었다는 기록을 보면 맞을 것 같다. 이 시골빵은 사워도우(sourdough), 천연효모가 천천히 발효하면서 신 맛이 나는 반죽으로 만드는 빵이다. 20세기 이스트가 상업적으로 보편화되면서 프랑스에서는 대부분 바게트로 대체되었다가 1970년대 Artisan bread (장인이 만든 빵?)이 인기를 얻으면서 부활했다고 한다.

우리 세 식구가 사흘 아침 먹을 크기

몬트리올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인 프르미에르 무아송(Première Moisson 첫 번째 수확이라는 뜻입니다)은 초기에는 프랑스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수입하는 밀가루를 썼다고 한다. 바게트, 크루아상, 타르트에 마카롱까지, 가게문을 들어가는 순간 프랑스에 온 기분이다. 어차피 몬트리올은 프랑스인의 후예가 다수인 도시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곳을 오랫동안 수시로 드나들었는데도 어떻게 빵 중의 빵, 기본이 되는 '시골빵'을 처음 사봤을까? 생각해 보니 우리에게 빵집이란 주식을 사는 게 아니라 간식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인 것 같다. 아니, 빵을 끼니로 먹는다 해도 뭔가 샌드위치라든가 토스트를 해 먹어야지, 톱니가 있는 칼로 껍질이 단단한 빵을 잘라 (그것도 집에서!) 브리 치즈를 발라 먹거나 올리브오일과 발사믹을 찍어 먹는 습관이 나는 아직도 새롭다. 


언젠가 워싱턴 DC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위해 조지타운의 베이커리를 찾아갔는데, 내 앞의 손님과 파는 사람이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팔고 있는 메뉴는 대부분 프르미에르 무아송에서 눈에 익은 것들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소울푸드를 찾으러 방문하는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첫 '시골빵'을 사 먹는 오늘 아침은 어쩐지 아주 약간, 몬트리올도 아니고 파리지엔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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