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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 일

저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저런 말을 할까?

by 모스




나는 MBTI로 치면 흔히 말하는 ‘대문자 T’다. 감정보다는 분석에 익숙하고, 사람을 만나면 패턴부터 파악하려 드는 쪽이다. 누군가 “우울해서 빵을 샀어”라고 말하면 “아, 이 사람은 우울할 때 군것질로 감정을 푸는구나”라는 생각부터 드는 사람. 감정 자체보다는 그 감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먼저 바라보는 쪽이었다. 그래서인지 감정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낯설었다. 비효율적으로 느껴졌고, 때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사람을,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하려 했다.


공학을 공부하고 회로를 분석하며 살아온 내게 그런 습관은 당연했다. 신호의 흐름처럼 사람의 말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을 거라 믿었고, 어떤 말이 나왔을 땐 그 안에 담긴 구조와 원인을 찾는 데 익숙했다. 감정은 언제나 부차적인 것이었고, 이해보다는 진단이 먼저였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결과물로 사람을 판단했고, 그 판단을 근거로 관계를 정리했다. 감정은 늘 뒷전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 방식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논리를 반복해도 달라지지 않는 관계, 아무리 분석해도 납득되지 않는 누군가의 말. 모든 걸 이해하면서도 정작 마음에는 닿지 못하는 그런 겉도는 느낌. 말과 행동은 해석할 수 있었지만, 그 말이 어떤 마음에서 나왔는지는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벽 앞에서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와 다른 결의 사람을 만났을 때, 그 말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됐는지를 먼저 이해하려 했다. 이 말은 무슨 뜻이지? 보다는, 어떤 마음에서 이런 말을 했을까 하고.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말이라는 건 결국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인데, 나는 그동안 그 수단만 붙잡고 마음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마음은 불완전한 언어로 밖에 드러나지 않는데, 나는 늘 그 불완전함을 트집 잡듯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 흐름은 아마 더 오래전부터 조용히 내 안을 바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이미 '당신의 언덕이 되고 싶다.'에서 공감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다. 당시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읽으며 공감에 대해 처음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고, ‘공감은 감정을 같이 느끼는 게 아니라 존재를 주목해 주는 일’이라는 말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그 말을 처음 읽었을 땐 고개는 끄덕였지만, 마음이 움직이진 않았다. 그 글을 쓸 당시, 나는 공감을 일종의 감정노동이라 생각했다. 관계 유지를 위한 매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애써 공감하려 애쓰는 나 자신이 늘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이건 너의 감정이지, 내가 책임질 건 아니야’라는 계산이 마음 한켠에 남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며, 나 스스로의 지난 태도를 반추하게 됐다. 감정은 소통에서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가장 원형적인 언어라는 것을, 삶의 중요한 국면에선 오히려 말보다 마음이 앞서야 한다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조심스럽게 내 감정의 온도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감정은 억누르거나 부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천천히 배워가야 하는 언어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여전히 판단하고 분석하는 사람이다. 머릿속에선 늘 정답을 찾고, 논리적 허점을 짚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왜 저렇게 말했지?”보다는 “어떤 마음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까”를 먼저 생각하려 한다. 덕분에 예전엔 이해할 수 없었던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엉뚱하다고 느꼈던 말들, 불필요해 보였던 표현들,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건 낯설고도 따뜻한 변화였다. 예전엔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그땐 마음이라는 걸 믿지 못했던 걸까. 어쩌면 그 둘 다였을 것이다.


‘당신의 언덕이 되고 싶다’라는 글을 처음 쓸 때,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다. 언덕처럼 기댈 수 있는 존재.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다만 그 글을 쓸 때의 나는 공감이라는 말의 껍데기만 겨우 만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공감은 단지 위로의 말 몇 마디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의 존재를 깊이 바라보는 일이고, 그 사람의 언어가 아닌 존재 자체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단순히 “너는 맞아”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의 마음을 보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일. 나는 그 차이를 이제 조금은 알게 되었다.


사람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꺼내놓는다. 누군가는 직설적으로, 누군가는 돌려서,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걸 알아차리는 일이 공감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공감이란 누군가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겠다는 교만이 아니라, 그 마음을 틀렸다고 하지 않겠다는 겸손이었다. 나는 그 겸손을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이제는 생각한다. 감정은 비논리가 아니라 또 하나의 논리라는 걸. 마음은 그 자체로 언어이고, 사람마다 그 언어의 문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라는 걸. 그런 생각이 내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뒤로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일이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더 이상 분석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나와 결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마음을 보는 데 서툴다. 때로는 여전히 머리로 계산하고, 말의 구조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려는 노력, 그 질문 하나가 나를 조금씩 바꿔주고 있다. ‘이건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질문은 내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조용한 방증이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진짜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보다는 마음을, 판단보다는 공감을 먼저 꺼내놓는 사람이. 그건 아마도, 언덕이 되고 싶다는 내 오래된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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