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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흐르는구나

몽쉘과 밀키스의 또 다른 이름

by 모스




매일같이 떠 있는 하늘이지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구름이 흐르는구나'.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도 없을 그 순간이, 내겐 꽤 오래간만의 여유였다. 구름이 흐르는 걸 인식할 수 있다는 건 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는 나만의 신호였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기에, 나는 그 순간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최근의 나는 오히려 더 바빴고, 여유롭다고 말하긴 어려운 나날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평온했다. 아마도 누군가의 존재가 내 마음을 안정시켜 준 덕분일 게다.


얼마 전, 아는 동생이 내게 물었다. “형, 연애하면 뭐가 달라져?” 그 질문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뭔가 일이 잘 풀리는 기분이야.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안정감이 있어.” 그 사람과 항상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매 순간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무엇보다도 ‘내 편’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사랑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우연히 만나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일. 그러다 어느새 서로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 사람의 취향이 나의 일상에 자리 잡는 일처럼 말이다.


나는 몽쉘을 좋아하고, 그녀는 초코파이를 좋아한다. 나는 밀키스를 즐겨 마시고, 그녀는 포카리스웨트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집에 갈 때면 자연스럽게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준비한다. 특별히 약속한 적도 없는데, 이제는 당연한 일처럼 굳어버린 습관. 원래 내 냉장고엔 없었을 그 포카리스웨트가, 그녀의 책상엔 없었을 그 몽셀이, 이제는 서로를 떠올리는 물건이 되었다. 사랑이란 서로의 세계에 없던 것을 조용히 데려와 자리 잡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게 있어 밀키스와 포카리스웨트는 우리의 사랑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되었다.


사실 나는 오래도록 사랑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는 물었다. “너는 왜 사랑에 대해서는 글을 안 써?” 그때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질문은 한참을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왜 쓰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전의 사랑이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연애는 했지만 그게 진정한 사랑이었는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첫 연애 당시 나는 너무 어설펐고, 서툴렀다. 그래서 설령 그게 사랑이었다 해도, 나는 그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지나쳐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는 조금은 다르게 느끼고 있다. 비로소 사랑이라는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음미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는 뜻이다.


여전히 사랑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은 무언가 거창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꼭 손을 잡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보고 있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서로의 존재를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마음, 그런 마음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그 사람과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그런 마음을 배워가는 중이다. 사랑은 애써 만들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조금씩 스며들어 어느 날 문득 풍경이 되어 있는 감정이었다. 내가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다면, 그건 아마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시선 덕분일 것이다. 내게 말하지 않아도, 매일 밀키스를 준비해 두는 그녀의 마음처럼. 말보다 오래 남는 마음은 언제나 조용한 방식으로 제 존재를 증명해 왔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결국, 서로의 세계에 없던 것을 나누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내 냉장고에 있을 리 없던 포카리스웨트, 그 사람의 책상 위에 있을 리 없던 몽쉘.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일부가 되어 가는 일. 구름이 흐르던 그날의 하늘처럼, 조용히 흘러가되 분명한 무늬를 남기는 감정. 나는 지금 그 무늬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다.

사랑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기보다는, 이 마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구름이 흐르는 걸 알아챌 만큼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 준 그 사람과, 그 사람을 바라보며 나 역시 조금은 더 나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는 믿음과 함께. 그런 믿음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 나는 이 사랑을, 그리고 나의 오늘을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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