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하고 '진인사대천명'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 나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쩌면 우리는 한평생을 ‘나’로서 살지만, 죽기 직전까지도 끝내 나를 다 알지 못한 채로 이 세상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나는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사람의 말에 왜 그렇게까지 상처받았는지, 때로는 나조차 내 마음을 납득하지 못할 때가 있으니까.
나는 감정의 파도를 쉽게 타지 않는 편이다. 물론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이 어느 선까지만 머물도록 하는 제어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면엔 내가 나라는 사람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과 그 외의 것들을 명확히 구분 지으려는 노력을 꽤 오래 해왔다. 그래서 어떤 걱정스러운 걱정이 닥치더라도 나름의 경계가 명확하니 딱 거기까지만 마음을 쏟을 수 있게 됐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를 안다'는 것은 단지 성격 몇 줄, 좋아하는 음식이나 MBTI로 설명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 무너지고, 언제 다시 일어나는지. 내 안의 견디는 힘은 어디까지고, 무엇이 나를 부러뜨리는지를 아는 일이다. 나는 어느 정도의 말에 무너지고, 어느 강도의 외풍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대략 알고 있다. 그걸 안다는 건, 나에 대한 나름 명확한 '경계선'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 경계가 선명하면, 불안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두려움이란 결국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감정이니까. 어떤 방향으로 힘이 가해져 올진 몰라도, 내가 견딜 수 있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면 막연함이 줄어든다. 걱정에 매몰되지 않는 사람의 비밀은 어쩌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지점을 아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안다고 해서 나에 대한 공부가 끝인 것은 아니다. 조금은 어려운 혹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우리는 3차원적인 실체가 아니라 4차원 시공간의 흐름 속에 있는 존재다. 즉,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축을 따라 계속 바뀌는 유동적인 존재란 소리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를 수도 있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진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를 둘러싼 환경과 시간, 선택들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조합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나를 안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일 순 없다. 즉, 나에 대한 여정은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결과가 아닌 계속해서 나를 탐구하고 정리하고 수정해 가는 그 일련의 과정 자체에 의의가 있다는 뜻이다.
삶의 여유, 유연함, 단단함이라는 말들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모르기에 더 흔들리고, 나를 모르기에 어떤 두려움은 끝없이 자란다. 하지만 내가 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 마치 정확한 도면 위에 설계도를 그리듯 삶을 조금 더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다. 마음의 설계는 결국 자기 이해에서 시작되니까.
결국 나를 알아간다는 건, 나를 믿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처럼 외부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부를 명확히 아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걱정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끝에서 언제나 나를 믿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