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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기쁨을 아는 아이로 만들자

                                                                              

얼마 전 설거지를 하고 와보니, 아이들이 받아쓰기를 하고 있었다. 1학년 때 오빠가 매주 목요일이면 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보느라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부러웠던 모양이다. 축복이는 동생에게 선생님처럼 받아쓰기 단어를 불러주고, 채점도 해주고, 틀린 것도 알려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가나다라부터 쓰게 하고 앉혀놓고 아이들을 받아쓰기 공부를 시켰다면 아이들이 과연 저렇게 신나게 즐기면서 놀 듯 받아쓰기를 했었을까 싶었다. 

축복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어린이집에서 받아쓰기 시험을 본 적이 있다. 축복이는 한글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에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는 70점, 80점을 맞아왔다. 그런데도 본인이 한글을 쓸 줄 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나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매번 받아쓰기 100점 맞는 친구는 받아쓰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오기 싫다고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점수를 잘 맞지 못하는 우리 축복이는 받아쓰기를 좋아하고, 오히려 100점 맞는 그 친구는 스트레스를 받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아마도 그 아이는 한글을 다 알긴 하지만, 한글 공부를 앉아서 딱딱하게 또는 엄마에게 혼나면서 배웠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부터 아이가 공부라는 것을 시작도 하기 전에 질려 버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앎의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 앎의 기쁨을 빼앗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우리 어른들은 조급한 나머지 아이가 앎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미리 차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잘 생각해볼 문제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이 호기심을 가지고 알고자 하는 게 있으면 흥미를 가지게 되고 누가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한다. 

어린 남자아이들의 경우 대부분 공룡을 좋아한다. 그러면 부모는 공룡에 대해 욕구를 해소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 주면 되는 것이다. 공룡 전시관을 데리고 간다든지, 책을 사준다든지, 다큐나 동영상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알아서 공룡에 한해선 박사가 되어간다. 그런 식으로 아이의 관심 영역을 넓혀주면 아이들은 하나씩 알아가는 기쁨을 알게 된다. 

그런데 어른들이 "트리케라톱스는 뿔이 몇 개야? 티라노사우르스는 육식공룡 맞아? "라며 자꾸 확인하고 지식적인 것을 요구한다면 아이는 부담스러워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더디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앎의 기쁨을 느끼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하나하나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아이라면 ‘공부공부’ 강요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 모두 아인슈타인처럼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그렇게 앎의 기쁨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아이들이라면 공부도 하나씩 알아가며 즐기는 아이들이 될 것이고, 공부가 아니더라도 인생의 많은 일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을 즐기고 도전하는 아이들이 되어갈 것이다. 부모가 먼저 나서서 이거 배워라, 저거 배워라 하기 보다는 아기가 호기심을 가지면 그때 얼른 그 호기심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면 충분하다. 

하나하나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아이라면 ‘공부 공부’ 강요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 모두 아인슈타인처럼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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