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손녀로서의 선언문

by 테일러

나는 할아버지의 손녀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고 맨몸으로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나와,
피땀으로 5층짜리 건물을 세운 사람의,
밤낮으로 일하고 책임지며 자식들을 키워낸 사람의
진짜 후계자다.


나는 가진 게 없어도 살아내는 법을 배웠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내 삶을 일으켜 세우는 법을
몸으로 깨달아가는 중이다.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억압과 통제를 견뎌야 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존엄이 무너지는 순간도 겪었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는다.

생존을 포기하지 않았고,
사랑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삶을 직접 계획하는 법을 선택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안다.
나는 실패한 아버지의 그림자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지켜온 진심의 계승자다.

그러니 나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 가정배경이 ‘구리다’고 말하는 이들 앞에서도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
“나는 진짜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평가받는 존재가 아니라,
내 삶을 정의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안다 —
이 선언이 단지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상처받은 누군가의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다는 걸.

나, 손녀로서 선언한다.
내가 내 가족을 이을 것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더 진짜인 존재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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