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루하루, 근육과 마음이 자라는 중입니다

by 테일러

10개월 전, 헬스장을 처음 등록할 때만 해도

나는 헬스장 가는 것만큼 싫은 것도 없었다.


다이어트는 성공해 원하는 몸무게에 도달했지만,

거북목과 구부정한 자세는 사진 속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움과 실망을 안겨줬다.


아무리 신경 써도 바뀌지 않는 자세.

나는 곧은 허리와 활짝 편 가슴,

목까지 이어지는 일직선의 옆모습을 기대하며

자세 교정을 위해 헬스장을 등록했다.


첫날의 나는, 트레드밀 위에서 걷기밖에 못하는 사람이었다.

웨이트 존에 가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어떤 운동기구가 어떤 부위를 자극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맛보기 PT 수업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PT 수업 날,

트레이너 선생님은 여성도 가슴과 등, 어깨 운동을 해야 한다며

로우로우, 시티드로우, 체스트프레스, 숄더프레스,

그리고 하체 운동으로는 힙 어브덕션 머신을 차례로 알려주셨다.


운동기구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자세를 배우며


'다음에 또 해봐야지'


하는 흥미와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운동.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것도 벅찼고,

다녀오면 3~4일은 운동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전히 RPG 게임, 책, 음악 감상이 더 즐거웠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불현듯 생각이 났다.

“지난번에 배운 운동기구...

지금 안 해보면 잊어버릴 것 같은데?”


단지 그 마음뿐이었다.

거창한 계획도 없었다.

까먹기 싫어서, 복습해보고 싶어서.


그 사소한 마음이 내 운동 습관을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당시는 오래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그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게 너무 좋았다.

그 후로는 퇴근 후 헬스장, 주말 아침에도 헬스장.

에어컨 바람 속, 조용히 힘을 쓰며 집중하는 시간이 나를 위로했다.


반복할수록 운동기구에 익숙해졌고,

매일 운동하는 내 자신이 기특했다.

집중을 위해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쓰고,

긍정적인 음악을 들으며 운동하는 순간이 내겐 최고의 안정이었다.


하지만 출석에만 의미를 두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렇게나 운동하면 실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루틴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쯤, 헬스를 오래한 지인에게 ‘분할 루틴’ 개념을 들었다.


기본은 상체와 하체를 나누는 것.

상체도 등과 가슴, 어깨와 팔로 나눌 수 있고,

여기에 데드리프트 같은 코어 운동을 더해 루틴을 만들었다.

하체도 허벅지 중심, 힙 중심 등으로 다양하게 분할할 수 있었다.


내가 만든 하체 루틴은 이렇다:

유산소 야외 걷기 30분

스트레칭 15분

프리웨이트 삼두 3kg 아령 3세트

프리웨이트 손목 3kg 아령 3세트

렛풀다운 미들그립 25kg 4세트

와이드 풀다운 20~25kg 4세트

데드리프트 50kg 4세트 (워밍업 20kg 1세트 포함)

천국의 계단 15분

마무리 스트레칭


상체 루틴은 이렇게:

가벼운 유산소 걷기 15분

등, 어깨 스트레칭 10분

케이블 푸시다운 10kg 4세트

렛 풀다운 25kg 4세트

시티드 로우 32kg 4세트

데드리프트 50kg 4세트

인클라인 트레드밀 20분

마무리 스트레칭


증량 이후에는 하루 쉬어야 다시 운동할 수 있었다.

근육별 자극이 오래 지속됐고,

회복 없이 무리하면 운동 능력도 떨어졌다.

지금은 주 3~4회, 상체와 하체를 번갈아 운동하는 루틴을 유지하고 있다.

증량의 계기는 주말 인바디 측정 중 트레이너의 한마디였다.


“근육은 0.1kg 늘리는 것도 어려워요.

늘리려면 지금보다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야 해요.”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그날 바로 모든 무게를 한 단계 올렸다.

당연히 횟수는 줄었다.


하지만 좌절보다는

‘나는 근육을 만들고 있다’는 긍정적인 자기 피드백을 계속했다.


데드리프트 20kg에서 시작해 50kg까지.

숄더프레스는 5kg도 버거웠지만 이제는 10kg도 가능하다.

체스트프레스는 20kg도 가뿐하다.

나약하던 부위에 근력이 생기고,

증량도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공보다 나를 더 기쁘게 만든 건,

그 순간의 두근거림이었다.


무게를 들어올릴 때마다 심장은 쿵쿵 뛰었고,

얼굴은 붉어졌지만 그 감정은 처음 느껴보는 종류였다.

너무나 힘들지만, 동시에 너무나 보람찼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땐 힘들고 귀찮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 모든 감정이 가짜 같을 정도로 운동의 기쁨은 생생하다.

그리고 이제는 운동을 시작할 때 이런 마음을 먹는다.


‘오늘도 강해질 거야.’


운동을 마칠 때는 또 이렇게 다짐한다.


‘내일도 운동해서 더 강해질 거야.’


누구도 나에게 강해지라고 한 적은 없다.

출퇴근하며 근육이 꼭 필요하지도 않다.

그런데 나는 강한 내가 너무나 좋다. 그리고 이제서야 알겠다.


몸이 강해지는 건 단지 근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도, 삶도 함께 단단해지는 일이라는 걸.


운동은 내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내 존재의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뜻대로 살고 있다는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