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원* 열세 번째 인터뷰. 내가 한없이 작아 보일 때
(인터뷰 당시 나이 25세, 여자)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아갈 것이며,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까 고민하며 지내고 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장 잘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좋아하는 그것들을 내가 잘 해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다. 거기에 간간히 문을 두드리는 불안과 상처들이 거듭되며 이런 고민에 무게를 더한 것 같다.
내가 잘하고 싶은 것을 짝사랑처럼 쫓는 느낌은 그리 썩 유쾌하지 않죠. 이 짝사랑에서 오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본보기로 삼고 있는 이가 있나요? 조언을 준다거나 힘을 주는.
학교 선배 한 사람을 생각해본다. 눈에 확 띄는 재능을 지니진 않았지만, 꾸준함으로 일관해서 지금 누구보다 멋진 생활을 영유하고 있다. 인내심 있게 독에 물을 부었더니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그 안의 노력들이 차서 넘쳐나던 사람. 꾸준함과 성실함이 재능을 만든 케이스로 앞으로 내가 닮고픈 롤모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은 언제나 양면성이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좋아하는 만큼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니까요.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일도 있을까요? 이를테면 취미 같은 거요.
음,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한다. 특히 소년 소녀 같은 시인들의 반짝이는 감성들을 사랑한다. 좋아하는 이병률 시인을 실제로 만나 책 앞장에 사인과 함께 ‘매일매일 질투 나는 일만’이라는 예쁜 말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더없이 행복했다.
정말로 질투 나는 일만 가득한 하루하루가 되길 빌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서로의 가치관이 닮아있고, 대화가 잘 통하며 영혼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오는 사랑이었으면 한다.
자신에 대해 한 줄로 정의해볼 수 있을까요?
문학을 사랑하고 디자인을 존경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너무 많은 나.
사람을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당신의 색은 무엇입니까?
빨강.
내 빨강은 핏빛과 상처와 낙엽의 빨강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아픈 일들과 상처 받은 기억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오늘 인터뷰를 끝으로 당신이 죽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좋아, 내일 죽어서 다른 인생을 시작하겠어.
나는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늘 무언가가 부족한 것 같고 잘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같다는 불안감도 가지고 있다. 다음번 인생에선 좀 더 멋지게 살고픈 바람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
이날 친구의 인터뷰에서 들은 고민을 나는 다소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도대체 왜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또 스스로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할까 하고 말이다. 그건 아무래도 거울이 없어 단 한 번도 똑바로 비추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그녀 앞에 거울을 들어 보자면, 친구는 감각적인 패션 센스를 가졌고, 단 일 년의 어학연수만으로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며, 문학과 디자인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재능이 있는 디자이너다.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질 땐, 이처럼 다른 사람의 눈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응시해보는 건 어떨까. 당신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에게서 좀 더 빛나는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하던 중 spill over(자연스럽게 쌓여서 흘러넘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억지로 갖다 붙이려, 억지로 쥐어짜 빛나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오랜 세월 모아 온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나도 모르는 사이 흘러넘치게 되는 순간에 대해서. 그 지점을 목적지로 두고 꾸준히 지금의 하루하루를 보내자고 웃으며 다짐했다. 그것은 5년 후가 될 수도 10년 후가 될 수도 혹은 더 느지막이 올지도 모르지만 조급해하지 않으며 조용히 걸어가는 나날, 내공을 한 알 한 알 부어가며 기다릴 줄 아는 예쁜 젊음을 살아보자고 약속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차고 넘쳐흐를 그날까지.
추신. 그리고 우리 가끔은 거울을 보고 삽시다.
마음의 정원 한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