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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두 달

1405

by 바셀린

사흘을 쉬고 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단번에 눈에 들어왔던 것은 당신이 석 달 넘게 몸져누워있던 8번 침대였다. 하얗게 비어있는 그곳.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당신이 결코 내 가족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잃었을 때의 기분이 바로 그때의 심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며칠의 오프 동안 당신에게 어떤 사달이 났을 것이라는 결론이 매우 쉽게 지어졌다. 왜냐하면 이곳은 그런 곳이니까. 그야말로 환자들이 생과 사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중환자실이니까. 폐의 깊은 곳에서 한숨이 쉬어졌다. 빈 침대를 바라보며 한 번 더 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이제 없다. 이곳에 없다.


당신은 참 손이 많이도 갔더랬다. 인공호흡기를 거쳐 기관절개관까지 삽입한 후에도 자꾸만 가래가 새는 바람에 좀 더 굵은 것으로 교체하기도 했었다. 정맥과 구강으로 투여되는 약물은 말할 것도 없고, 입원한 이후로 피부 상태가 계속 나빠져서 결국 욕창을 얻었다. 그 또한 설사에 가까운 무른 변을 주야장천 보는 바람에 남들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더 나빠졌었다. 싯누런 진물이 줄줄 흐르고 피하지방까지 드러난 엉덩이 주변을 간호사들은 마치 사명처럼 시간마다 달려들어 당신을 뒤집고 변을 야무지게 닦아내고 드레싱을 치덕치덕 해대었다. 두 눈이 돌아갈 시간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중환자실의 생리를 보건대 중증도와는 별개로 다른 환자들보다 훨씬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당신을, 간호사들은 솔직히 힘겨워할 수도 있었겠다.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바로 당신이었기에 누구 하나 군소리 없이 당신을 대했다. 결승점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뛰는 쪽인 것이 당연하다. 간호사들은 목마른입에 물을 축여주고 처진 등을 힘껏 밀어주며 때로는 두 손을 잡아 끌어당길 뿐이다. 그렇게 당신은 달려왔었다.


당신의 부인은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면회를 거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흐트러진 모습 또한 보인 적이 없었다. 항상 정갈한 베이지색 코트에 은색 안경을 쓰고 고급스러운 무늬가 박힌 자줏빛 가방을 들고 당신을 만나러 왔었다. 깨끗한 수건으로 손발을 닦아주며, 진정제에 취해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있는 당신에게 내일은 나아지라고, 지금보다 조금씩만 나아지라고 주문처럼 말을 건네었다. 가끔은 호전되지 않는 당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무의미한 화를 내었다. 그때마다 간호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위로를 전하려 했었다. 본의 아니게 사업을 잇고 있다는 당신의 아들 또한 지극정성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든든한 덩치에 늘 하얀 운동화와 청바지를 걸치고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당신의 아들을 보면서 당신이 얼마나 공을 들여 그를 키워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딱 한 번, 울먹임을 보인 적이 있었다.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울음 속에 당신의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해하려고, 조금이라도 이해를 해서 지금의 절망을 눈곱만큼이라도 스스로 납득하려는 듯한 그 눈빛을 잊을 수는 없을 테다. 유난히 동공이 커서 이따금 의식이 돌아올 때면 정말로 또렷하게 보였던 당신의 그 두 눈을 똑 닮았기에 더욱 짙게 각인됐으리라.


그러나 내 예상은 가볍게 틀려버렸다. 당신은 사흘 전에 좋아지고 있던 컨디션 그대로 병동으로 올라갔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들의 바람대로 병동으로 기어코 올라갔던 것이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8번 침대에 누워 사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승리한 것이었다. 중환자실에서의 마라톤은 일단은 끝낸 것이었다. 이제부터 당신은 이곳보다는 조금 덜 가파른 언덕을 천천히 걸어가면 될 것이었다. 살포시 미소가 지어졌다.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재였다. 지금 당신의 부인은 당신의 곁에서 오늘도 손발을 닦아주고 있을 것이고, 아들 또한 함박웃음을 지은 채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가족들에게는 면회가 제한되는 이곳보다 내내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그곳으로 옮긴 사실만으로도 당분간은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두 달 후, 중환자실로 소포가 배달되었다. 처음 보는 주소와 이름으로 된 발신인이었기에 내용물 또한 쉽사리 짐작할 수 없었다. 이틀 동안 방치된 채 호기심만 늘어가다가 누군가의 결단으로 개봉된 상자 안에는 웬 커피가 잔뜩 들어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꽤나 유명한 브랜드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는 한 통의 편지가 동봉되어 있었다. 진득한 명조체의 손글씨로 적힌 그것의 주인공은 당신의 아들이었다. 이국적인 커피는 달고 진했으며, 정성스레 작성된 편지는 그 존재만으로도 감미로웠지만 그 내용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두 달 동안의 병동 생활 끝에 세상과의 끈을 놓게 되었다는 당신의 비보가 한 장 가득, 하지만 담담하게 적혀있었다. 생의 마지막 몇 개월을 간호사들 덕에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는, 당신의 아들이 써 내려간 차분한 문체에 간호사들은 고요한 탄성을 지그시 내뱉었다. 8번 침대에 다가가면 고소하게 풍기던 당신의 냄새를 기억한다. 길고 길었던 당신의 투약 카드를 기억한다. 엄지발톱이 갈라져서 그곳에 무좀약을 바르며 당신과 웃는 눈을 마주쳤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답답한 가래를 시원하게 뽑아낸 직후의 당신이 편안한 첫 숨소리를 기억한다. 무엇보다도 당신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기억을 기억하겠다. 사흘 만에 알게 된 즐거운 부재, 두 달 만에 알게 된 안타까운 부재의 당신이었다. 이제는 말 그대로 지금 이곳엔 없는 당신이지만 우리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이었을 당신의 그 시간들, 그리고 그토록 달달했던 커피의 풍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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