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할머니
내가 장사하고 있는 곳은 인구수 2,000명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면단위이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를 다 알고들 계신다.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자녀들의 수는 몇 명 인지도 알고 있는 곳이다.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에 홀로 생활하시는 할머니들이 굉장히 많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들이 대부분 먼저들 돌아가셨다고 한다.
한평생을 같이 살기로 약속하였지만, 야속하게도 할아버지들은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원하지 않던 이별을 하게 된 할머니들은 이따금씩 나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나는 그녀들의 자식도 손자도 아닌데 어찌 된 영문인지 묵혀왔던 그간의 일들
할아버지를 따라 시집오게 된 이야기, 할아버지들의 살아생전 직업과 일상들을, 최근 자식들의 근황
까지도 알려주신다.
태권도 사범이었던 할아버지를 따라 시집오게 된 옆집 박 씨 할머니
나는 그녀를 선글라스 할머니라고 애칭을 붙였다.
그녀는 종종 집으로 날아오는 청구서와, 우편물들을 나에게 읽어달라고 하신다.
눈에 장애가 생겨 항상 선글라스를 차게 되버리신 할머니에게는 최근 기쁜 일이 생기셨다.
이날도 어김없이 나에게 우편물이 왔다고 읽어달라던 할머니의 우편물 내용은
면에서 시각장애인용 tv가 지원된다는 소식이다.
내심 기뻐 할머니에게
"할머니 이제 작은 티브이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보실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tv가 문제가 생겼어?"
"그게 아니라 커다란 티브이를 주신데요 그러니까 내일 면사무소에 꼭 방문해 보세요!"
자식들에게 눈이 안 좋아 좋아하는 연속극을 불편하게 보고 있다라고 말도 못 하던 할머니가
이젠 당당하게 요즘 연속극을 속 편하게 볼 수 있겠네 하며 소녀같이 웃던 모습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선글라스 할머니는 지금도 자식들에게 미안한 게 많다고 하신다.
할아버지 하나 믿고 이곳 시골까지 오게 되었는데
자식은 5명이나 되었지만 반면 할아버지의 수입은 너무나 적었고
그래서 선글라스 할머니는 동네에서 작은 식당을 열어 자식 5명을 다 교육 시켰다고 한다.
혼자서 5명의 자식과 남편까지 책임져야 하니 생활은 나아지지가 않았다.
생활고가 힘드니 첫째 아들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만 마무리하고 일을 시작하면 안 되겠냐고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고
그 말을 들은 첫째 아들은 어머니 저 대학교에 가고 싶어요라고 했다고 한다.
첫째 아들은 동네에서 머리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학교에서도 성적도 출중하였기에
공부에 자신감도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선글라스할머니는 일을 하라고 더 강요할 수 없었고
본인이 더 고생해야지 다짐하며 매일 자식들과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그 이후 첫째 아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다고 한다.
선글라스 할머니는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자식들 자랑을 하신다.
그리고 치킨이 드시고 싶으실 때마다 하는 말씀이 있다.
"우리 서울에서 대학 나온 아들이 나 통닭 시켜 먹으라고 돈 줬어~ "
하며 기분 좋게 주문을 해주신다.
매일 뜨거운 기름 앞에서 땀 흘리며 튀기는 치킨이지만
나는 이렇게 사연을 알고 있는 치킨을 튀길 때는
어째서인지 콧노래가 나온다.
아참 할머니 tv는 언제 주신데요..?
주위사람들과 가족까지도 말렸던 결혼을 왜 선택하게 되었냐 물었을 때
선글라스 할머니는 배시시 웃으며 "그래도 할아버지가 좋으니 왔지"라고 한다.
나도 내 사람이 나중엔 할머니가 되어
내 생각하며 배시시 웃었으면 좋겠다.
선글라스 할머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