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만나고 또 사랑하게 되는 것은 흥미롭지만 어려운 일이다. 외따로 살아온 두 세계가 맞부딪힌다. 두 세계는 몇 번의 전쟁을 보내며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하고. 외교적인 마무리 끝자락에 어느 정도 국경선을 그어야 한다. 그래서 당신과 나는 머그컵을 사용하는 방법을 정해야만 했다.
당신은 머그컵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엄격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의외로 모든 것에 빠르게 체념하는 성격이었기에 당신의 법을 외우고 따랐다. 물을 마시는 컵과 우유나 주스를 마시는 컵을 분리했다. 물을 마시는 컵은 하루 끝에 씻었고 다른 컵들은 사용하고 나서 바로 설거지했다. 물을 위한 머그컵은 가장 오른쪽에 두었고 다른 컵들은 크기별로 줄지어 세웠다. 같은 크기의 컵은 무지개 순서에 따라 빨간 것을 앞으로 꺼냈다.
머그컵을 시작으로 당신과 나는 참 많은 버릇을 나눴다. 나는 나의 작은 세상을 두 칸으로 나누어 한쪽을 당신으로 칠했다. 시간이 지나고 구태여 친 빗금이 넘어져 내게로 흘러넘쳤다. 내 세상은 당신의 색으로 칠해졌다. 나는 당신을 닮아가며 나를 조금씩 잃었다. 스스로를 상실하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빈 곳에 당신을 채우는 것이 좋았다.
중간 크기의 파란 머그컵을 꺼내 맥주를 따랐다. 맥주를 입에 담아 목으로 넘겼다. 보릿빛 탄산이 식도를 튕겨 냈다. 그에 화답하듯 심장 박동이 커졌다. 맥주 거품이 잦아들며 자그락거리는 소리가 더해졌고 트림 소리가 부끄럽게 악장을 마무리했다. 맥주 한 모금의 오케스트라에 얼굴과 마음 모두에 홍조가 들었다. 붉은 얼굴이 신호등 같다며 웃던 당신은 내 손을 헤살 놓고 머그컵을 가져가 맥주를 마셨다. 날은 추웠지만 사는 것이 따사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