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철 지난 청바지처럼 색이 바랬다. 큰 돌에 걸터앉아 오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참 오랜만에 하늘을 구경하는 사치를 누렸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에는 최고의 날씨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숙제마냥 미뤄두었던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오늘 하루 벼락치기로 다 풀어내기로 마음먹었고. 오늘은 그리움의 날이라는 바보 같은 다짐과 함께 커피 한 잔을 사서 동네를 서성였다.
봄은 언제나 새로움의 계절이었고. 봄을 위해 거쳐가야 하는 겨울은 많은 것들이 끝나는, 또 끝나야만 하는 계절이었다. 늘상 겨울의 끝을 붙잡고 새로운 것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지만 잔인하게도 언제나 봄은 왔다. 이번 겨울도 마찬가지였고 참 그리워할 사람이 많았다. 이번에 헤어지더라도 종종 만나면 된다는 생각은 과연이라거나 현실적으로 라거나 상식적으로라는 차가운 말들과 함께 아무래도 마지막 만남이었겠거니 하는 결론으로 매듭지어졌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꽤나 그리운 말이어서 꽤 오래 걸으며 마지막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마지막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내게 꽤 익숙한 것이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서도 바로 마지막을 상상하는 버릇은 어린 시절부터 죽 길러온 나쁜 습관이었다. 미리 마지막을 상상해야만 덜 상처 받는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것이 얼음장같은 물에 발을 디디는 것처럼 너무나도 아팠기 때문이다.
하늘이 짙어지고 가로등이 애매하게 켜질 때쯤 마지막이라는 말과도 작별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마지막일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보내 주어야만 했다. 당신은 한강 둔치의 풍경이 되었다. 또 다른 당신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소주집의 먹태로 남았다. 보드게임 앞의 바보 같은 웃음소리나 버스 타러 가는 길의 조용한 속삭임에도 몇 명을 남겨두었다. 몇 명은 기대했던 만두 냄새나 매운 향수 냄새로 담아 두었다. 참 많은 사람들과의 마지막을 추억으로 포장하여 하나하나 머릿속 어딘가에 걸어두고는 집으로 향했다. 차마 오늘 그리워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날로 슥 치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