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은 사람을 고즈넉하게 한다. 항상 눈꺼풀이 무겁고 하품이 많은 나였지만 어째 점점 나이가 찰 수록 잠이 괴로워진다. 요즈음은 더욱 그렇다. 꾸지도 않던 꿈을 꾸며 눈을 붙여도 영 잠결이 고르지 않다. 자야 한다, 자야 한다며 되뇌지만 그런 강박은 결국 상념을 부를 뿐이다. 나의 거의 모든 근심과 걱정의 근원은 아마 침대일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들을 구태여 만들어 낸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면 잠을 포기한다. 생각이 흘러가도록 놔두는 것이 편하다.
먹먹한 어둠 속에서 형광등을 켜는 것은 새벽을 즐기기 위함이다. 평소에 열지도 않던 창문을 열어두고 공기를 기도로 흘려보낸다. 많은 작가들이 새벽 공기의 아름다움을 성토하기에 바빴건만 아무래도 내게 그런 감성은 없는 모양이다. 영 축축하다. 약간은 께름칙하면서도. 굳이 싫지는 않다. 첫 키스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문득 든다. 황홀하다기보단 어색한. 묘한. 거북하지는 않은. 별도 보이지 않는 새벽하늘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어본다. 한숨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고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퍽 슬픈 일이다. 그 슬픈 일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도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적엔 쓸모도 없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을 예전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좋아하는 카라멜 마끼아또 같은 글을 쓰고 싶었지만 내 글은 언제나 에스프레소다. 그것도 꽤나 진한. 나름대로의 수요가 있긴 했지만 만족은 하지 못했다. 편지를 쓸 적에도 마찬가지다. 편지에 어느 정도의 알큰함이나, 향긋함을 담고 싶었지만 영 재능이 없었다. 내가 쓴 편지는 내가 읽어도 쓰다. 기껏해야 애절함이나 들어 있을까. 요즘엔 기약 없는 편지를 쓴다. 주인이 읽지 못할 편지는 다소 황망하다. 쓴 편지를 몇 번 읽고 나선 찢어버린다. 도달할 수 없는 편지는 있으니만 못하다.
새벽이 끝나는 순간은 눈꺼풀이 내려앉을 때다. 시계를 흘긋 보고 내가 몇 시간이나 잘 수 있을까 계산한다. 시간과 약속에 대한 강박은 알람 없이 내 심장을 지그시 눌러 잠에서 깨게 한다. 자고 싶지 않지만, 자야 한다. 오늘은 오늘이어야 하고, 내일은 내일이어야만 한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했으니,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도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