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무엇보다도 글쓰기의 모든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고 기뻐해야 해요."
끝까지 쓰는 용기 中
나는 글로자다. 글로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아직 글로 먹고살지는 못하지만 매일 성실하게 일정한 글노동을 한다. 처음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학창 시절 때 가장 망설였던 건 창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재능이 없어서 안 될 거라 생각하기를 10년. 그 세월 동안 열심히 남들처럼 근로자로 평범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 노동이 이왕이면 글노동이면 좋겠다는 소망이 자라나다 못해 갈망으로 바뀌는 순간까지 와버렸다.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글로자로 살아보기로 다짐했다.
좋은 기회가 닿아 1년도 안 돼서 작가로 데뷔했다. 그 시간 동안 글로자로서 성실히 살아냈다. 그리고 첫 데뷔와 함께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0년 전, 전혀 몰랐던 작가의 재능에 숨겨진 비밀을 말이다. 작가에게 있어 재능이란 잘 쓰는 것이 아닌 끝까지 써내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운동과도 같았다. 내가 필라테스를 2년 넘게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초보딱지를 떼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만큼 꾸준히 열심히 하지 않아서다. 내가 지난 10년 간 그리고 그전에도 작가가 되지 못했던 이유는 똑같다. 꾸준히 열심히 쓴 적이 없어서다. 난 첫 출판 이후 매일 글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꾸준함이 작가를 완성시키는 재능이라면 해볼 만하다 싶었다.
나는 딱히 잘하는 게 없는 학생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사교성이 좋아서 리더 역할을 하는 것도 신체 능력이 좋아서 몸을 잘 쓰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오래 앉아있는 건 누구보다 잘했다. 아침에 등교하면 점심시간 전까지 일어나지 않는 게 힘들지 않았고 저녁 12시까지 공부는 안 해도 앉아있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재능이었다. 그래서 난 평생을 재능 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서야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엉덩이가 무거운 재능 덕분에 얻은 것이 많았다.
20대 후반에 뒤늦은 취업을 했는데 재택을 선호하는 회사였다. 그래서 집에서 매일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근무가 끝나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다 보면 늘 잘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특별한 재능 덕분에 그 생활을 5년 동안 무난하게 지켜왔다. 그리고 글로자가 되었을 때 진가를 제대로 발휘했다. 작년 퇴사한 후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겠다 다짐했을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격증 시험처럼 문제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데드라인이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내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건 자유를 가장한 함정이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글노동만큼이나 주도적인 행위는 없었다. 스스로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책상에 앉아 글을 써 내려가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노동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쉬운 노동이었다. 평생 자유로운 출퇴근 속에서 스스로 방에서 일해왔던 습관은 글로자로서의 방향 전환을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그저 근로자에서 글로자로만 바꾸면 되는 것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늘 하던 대로 집에서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노트북을 켜고 오늘치의 글노동을 해내면 그만이었다. 난 엉덩이가 무거운 덕분에 누구보다 꾸준히 쓰는 글로자로 살아가고 있다.
남들처럼 오후까지는 근로자로, 저녁에는 글로자로 살고 있다. 난 평생 글 노동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