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라는 길 중심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
성수동 거주자 누구 씨의 주요 반경 동선에는 꽤나 자주 영동대교가 등장한다. 매주 가는 요가 수련원은 청담동에 있어 돌아오는 길에 꼭 영동대교를 지난다. 동네에 있는 요가 수련원을 갈 법도 한데, '수련'이라는 것이 어려운 곳이라 패스. '마음과 몸의 수련'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굳이 멀리까지 행차하신다.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가로수길에서 만나게 된다. 고민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맛집이 꽤나 있는 편이고 직장인들이 모이기 쉬운 곳이므로. 모임을 가는 길에, 혹은 오는 길에는 꼭 영동대교를 지나게 된다.
영동대교는 같은 풍경으로 그 자리에 있어주지만 매번 달랐다.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다 돌아오는 길 영동대교가 보여주는 풍경은 공허하기 짝이 없고 요가 수련을 하고 오는 길의 풍경은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다. 만남을 시작해보자는 고백을 받고 돌아오는, 그 길에 건너게 된 영동대교는 칠흑같이 어두운 강 사이 주황색 불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날도 요가를 끝내고 나오는 길, 분명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비가 올까 말까 하늘이 심술만 나 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땅이 구멍 나도록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달리면 3분. 최대한 안 젖어보겠다고 요가 가방을 머리에 이고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온몸이 흠뻑 젖어서 버스에 올라 탄 후 멍-하게 창문 밖을 바라보다, 어김없이 영동대교를 지났다. 그때 보았던 풍경에서는 영문 모를 감정이 들었다. 상황적으로 다양하게 고민거리가 많았던 때, 그 풍경에서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쳐져있었던 입꼬리가 그 순간만큼은 미소 짓게 되더라는 것이다. 검게만 보이던 강들이 빗방울에 잘게 일렁였고 창문에 붙어있는 빗방울들이 가로수등들을 더 환하게 해 주었다. 잠시 그 풍경이 나를 토닥여주고 감싸주었다. '잘하고 있어.'
수십 번을 지났었던 영동대교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었다면, 꽤나 휘향 찬란한 말이지만 그렇기도 했다. 그 자리에 그대로 변함없이 있어주는 풍경들이 나의 하루하루를 함께 견디어주고 있었다.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내 삶 속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그 풍경만이, 가끔은 사람보다 위안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