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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결혼식을 감행하다.

결혼에 대하여

by 다정한 지혜씨

결혼이란 나에게 있어서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서른셋이 되어서야 제일 늦게 결혼식을 올린 나는 이렇게 혼자 늙어서 쓸쓸히 죽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데 그래도 기왕이면 뭐라도 한 후에 후회를 하고 싶었다. 직접 가보지 않은 길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사실, 난 남자친구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면서 이미 신혼생활을 비슷하게 했던 터라 결혼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었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결혼을 할 거라는 믿음에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장난스럽게 결혼 얘기를 꺼낸 날 남편의 눈동자가 묘하게 흔들리는 걸 본 후에 나는 '아, 이 사람은 나랑은 결혼까지는 할 생각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장난으로 꺼낸 말이 진심이 된 순간 가게 분위기는 순식간에 살얼음처럼 차가워졌고, 뭔가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남자친구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널 많이 아끼고 사랑하지만 지금은 내가 가진 것이 너무 없어 당장에 좋은 집에서도 시작할 수 없고 지금 이런 상황에 우리가 결혼을 한 다는 건 아닌 것 같아. 일 년이나 이년 뒤에 하는 건 어때? 그때까지 우리 마음이 변 할 일도 없고 조금 늦어질 뿐이지 안 하는 건 아니니깐 그렇게 하자."


난 순간 남자친구의 말에 뭐라고 해야 할지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고, 우린 일주일 뒤 다시 결혼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다. 난 한참을 고민끝에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며칠을 고민하고 내린 결론인데 내 생각을 말할게 내 나이가 올해 서른셋이야 그건 알고 있지? 자기는 남자치고는 어린 나이라 결혼을 늦게 해도 상관없겠지 근데 나는 아니거든 나는 신혼생활도 누리고 싶고 아이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가지고 싶어 그런데 일이 년 뒤에 하자고? 그때 우리가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해? 그리고 일이 년 뒤면 자기가 무슨 억만장자라도 돼? 지금이랑 그때랑 뭐 얼마나 차이가 있겠어? 내 생각에는 돈은 결혼할 때 그리 중요하지 않아 마음이 중요한 거지 그때 대출받으나 지금 대출받으나 똑같잖아 그냥 올해 안 할 거면 우리 이쯤에서 그만하자 나 더 이상은 못 하겠어."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내 말에 남차진구는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난 벙어리가 된 남자친구를 보며 곧이어 내가 뱉은 말에 대해서 후회하기 시작했다. 정적이 흐르는 몇 분 동안 난 '정말 이 사람이 그만두자고 하면 어떡하지? 그냥 초강수를 둔 것뿐인데, 안 그러면 당신을 놓쳐버릴 것 같아서 내 진짜 속마음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라고 생각을 했고 드디어 남편의 입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래 맞아 자기 말이 다 맞아 나도 자기 놓치기 싫어 그러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내가 정말 미안해. 우리 결혼하자."


그렇게 우리는 초스피드로 양가 부모님께 결혼 결심을 먼저 알렸고 상견례를 하기도 전에 날짜를 잡고 결혼식장을 예약했다. 어쩌면 나는 믿음 그전에 우리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결혼식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듯 보였다. 웨딩촬영을 하고 청첩장을 만들고 신혼여행을 계획하고 가구들을 보러 다녔다. 우리는 결혼 준비 기간 동안 단 한차례도 다투지 않았고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가 들이닥쳤고 우린 또 한 번의 산을 건너야만 했다.


예식장에 처음에 예약했던 300명의 하객수가 50명으로 줄고 하와이로 계획했던 신혼여행도 국내여행으로 바꿨다. 예식은 하객이 거의 없는 조용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치러졌고 나는 왠지 모를 분함에 *버진로드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신랑 신부인 나와 남편을 빼고 하객들과 양가 부모님까지 마스크를 쓴 기묘한 결혼식이 지나갔다. 신혼여행을 가던 날 비행기 대신 남편차를 타고 여수로 내려가는 길에 우리 둘은 침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고, 나는 온마음 온몸으로 그 모든 것을 만끽한 채 단 한 톨의 아쉬움 없이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버진로드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통로를 말한다.

신부가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상징하며, 아버지의 보호 아래에서 신라에게 인도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버진'은 순수함과 시작, 그리고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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