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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임신을 하다.

그렇게 난 엄마가 되었다.

by 다정한 지혜씨

며칠 동안 잠을 푹 자고 일어나도 피곤함이 몰려왔고 왕성하던 식욕마저 없어지자 나는 이상한 촉에 약국으로 향했다.

'뭐지? 뭔가 이상한데... 설마? 에이, 그럴 일이... 없는...!!!!'

곧이어 임신테스트기를 세 개나 사온 나는 화장실로 향했고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찍은 두줄을 확인하고야 말았다. 임신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남편과 나는 아이를 가지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내 예상밖에 너무 빠른 진도였다. 그렇게 불현듯 갑자기 나는 임산부가 되었다. 테스트기에 찍힌 두줄을 보자 내가 엄마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과 이제 그 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뭔지도 모를 기분에 휩싸인 나는 남편에게 제일 먼저 임신 소식을 알렸다. 남편은 나와는 달리 그날 저녁에 케이크와 꽃을 사들고 와서 임신 축하 파티를 했고 나는 그때까지도 계속 멍 한 상태로 임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곧바로 산부인과로 향했다. 내 뱃속에 있는 것이 아기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산부인과에 도착하니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어른아이와 임산부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내 미래의 모습인가?' 난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내 몸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내가 아이를 키울 수가 있을까?'

'한 생명을 키워내는 일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런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를 휘감을 때쯤 내 이름을 호명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진료실로 향했다. 초음파 기계를 배에 갖다 되니 곧이어 작은 알갱이 같은 아기의 모습이 보였다.

임신 4주 차, 정말 임신이었다.

'세상에! 내가 임신을 하다니!! 내가 아이엄마라니!!'

아기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을 하자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온 나는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때, 간호사 선생님이 임신을 축하한다며 분홍색 임신배지와 달마다 필요한 검사가 적힌 수첩을 가지고 왔고 나는 배를 만지며 버스가 아닌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 뱃속에 또 다른 생명이 산다는 것이 믿어 지질 않았다. 배를 만져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나는 먼저 노트북을 열어 임산부가 먹어도 될 것과 먹으면 안 될 것을 먼저 검색했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은 넘치는데 먹을 수 있는 것은 확 줄어 나는 적잖이 당황을 했다. 당연하던 하루 한잔의 아메리카노를 이제는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래도 이제 옷을 입을 때 배가 나와도 신경을 안 써도 되는 현실이 즐거워 괜찮은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태교에 도움이 되는 것들도 찾아보며 임신기간을 나름 알차게 보냈다. 나는 임신기간 동안 거의 매일 임신일기를 썼다. 아이가 듣든지 말든지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떠든 날도 있었다. 아이는 내 뱃속에서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고 막달이 되자 배가 툭 불거 올라올 정로 발길질도 세졌다. 임신기간에는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을 알차게 보냈던 것 같다. 전시회를 가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열 달을 다 채우니 어느새 출산일이 임박해져 있었다.


제왕절개를 할 생각으로 확고했던 나는 출산일이 임박해지자 갑자기 모성애가 생기더니 이내 자연분만으로 생각을 바꿨다. 아이를 조금은 덜 두렵게 자연스레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40주가 넘어가도 아이는 뱃속이 좋은지 나올 생각이 없는 듯 보였고 나는 41주가 넘어가던 차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유도분만을 시작하자 자궁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고 허리가 뒤틀릴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마치 덤프트럭이 온몸을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내진을 하러 올 때마다 나는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욕을 속으로 삼키느라 힘들었고 결국엔 양수가 먼저 터지고야 말았다. 양수가 터지자 진통은 몇 배나 더 심해졌고 나는 내가 기절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선생님이 아이가 배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 하니 이제는 제왕절개를 해야만 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이 터지며 의사 선생님의 손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로서 첫 단추부터 아이한테 뭔가를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자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제왕절개를 하든 자연분만을 하든 아이한테 미안할 필요는 없다.


아이는 제왕절개로 3.78kg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아이를 처음 본모습은 마치 쭈글거리는 외계인처럼 보였고 나는 마취에 취해 내 애가 아니라는 헛소리까지 지껄였다. 그렇게 난 엄마가 되었다.

이 세상 엄마들은 다 위대하다. 수박만 한 배를 이끌고 다니며 온갖 일을 다하고 한 생명을 잉태한다. 평생을을 자신을 갈아서 아이를 키워내며 자신도 키워낸다. 아이를 낳고 내 세상은 다르게 변했다. 나는 이제 예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나를 항상 일 순위로 두었던 생에서 나를 다음 순위로 두는 인생은 쉽지 않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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