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았다.
나는 아이를 보자마자 마취제에 취해 내 아이가 맞느냐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곧바로 잠이 들었다. 그러부터 약 한 시간 후 쭈글거리는 검붉은 외계인 같은 모습의 아이가 정말 내 아이였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병원 천장이 희미하게 보였고 곧이어 남편얼굴이 보였다. 남편은 감탄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고 나는 이제 정말로 아이 엄마가 되었다는 뿌듯함과 스스로의 대견함으로 어깨가 하늘높이 솟아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나의 안부를 기다리고 있을 엄마와 할머니, 시댁어른들께 전화를 돌렸고 나는 그제야 비로소 온전하게 아플 수 있었다.
제왕절개의 후 아픔은 정말이지 상상 초월이었다. 이미 열세 시간의 진통을 겪은 나는 덤프트럭이 허리를 깔고 지나가는 것보다는 덜 아프겠지 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저녁 무렵 시작된 사지가 으스러지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제일 힘들었던 것 등과 허리의 배김이었는데 나는 살면서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몸을 이리저리 수없이 비틀기는 처음이었다. 물론 무통주사가 나의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흐르고는 있었지만 그 작은 원통 안에 든 투명한 액체는 고통을 반조차도 줄여주지 못했다. 그날 난 거의 잠을 잘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가 겨우 아침을 맞이했고 배가 찢어질 듯했지만 아이를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향해 걸어갔다.
거의 기다시피 도착한 신생아 면회실 창 앞에는 여러 아이가 있었지만 내 이름이 적힌 나의 아이에게서만 유독 빛이 나는 듯 보였다. 동그란 머리에 동그란 코 동그란 입을 가진 아이는 정말 천사처럼 이뻤고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삼켰다. 나는 아이에게 백일동안 젖을 물렸는데 처음 아이에게 젖을 물리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가슴이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는 일을 한다는 것이 새삼 감동스러웠고 이제 여자에서 엄마로서의 진짜 자격이 생긴듯한 느낌에 황홀하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나와 아이는 탯줄은 끊어졌지만 한 몸이었다는 서로의 기억을 간직한 채 조리원으로 향했다.
조리원에 도착한 나는 방을 배정받고는 빠르게 짐을 풀었다. 이제는 아이를 자유롭게 안을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남편이 조리원을 나서자마자 묘한 불안감과 답답함이 파도처럼 나에게 밀려들었고 나는 공황상태에 빠진 듯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방이 뒤틀리는 듯한 상상이 들며 내가 조리원 방 한가운데 떠 있나 하는 착각에 얼얼해질 때쯤 난 현실을 직시했다. 정작 열 달을 함께했던 아이는 나와 같이 있지 않았다. 그제야 나의 마음속 깊이 불안의 원인을 찾았고 아이를 24시간 온전히 볼 수 없다는 사실과 뱃속의 허전함, 남편의 부재, 앞으로의 엄마로서의 역할들이 나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목보호대를 차고 유축기를 머리맡에 두고 퉁퉁 부어버린 얼굴과 몸을 들여다보는 조리원의 2주는 내게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2주 내내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오는 남편을 붙잡고 엉엉 울었고, 친정식구와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가며 울었다. 남들은 우스개 소리로 조리원을 천국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정반대였던 그곳의 생활이 끝난 후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집으로 돌아온 뒤 마음은 안정된 듯했지만 불면증, 무력감, 우울감, 시도 때도 없는 눈물등은 몇 달을 내 옆에서 떠나질 않고 날 괴롭혔다. 천사 같던 아이는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밤낮이 바뀌어 잠을 자지 않았고 께어있는 시간에는 거의 울어댔다. 그렇게 백일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이는 백일동안 울고 때로는 웃다가 때로는 내 눈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입에서 소리라는 것이 들렸고 그제야 난 내가 혼자라는 불안감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산후 우울증은 출산 후 4주에서 6주 사이, 즉 산욕기 동안 우울한 기분, 심한 불안감, 불면, 과도한 체중 변화, 의욕 저하, 집중력 저하,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 없음 또는 죄책감을 경험하며, 심하면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기능 저하를 초래하는 질환이다. 주된 증상은 우울과 불안을 느끼는 것이며, 대개 출산 후 첫 10일 이후에 나타나서 산후 1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 발생률은 산모들 중10~15% 정도이며, 초기에 서서히 증상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악화된다.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몇 달에서 몇 년 동안 산후 우울증을 앓을 수 있다. 특히 과거에 우울증 같은 기분 관련 장애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산후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출산 후에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 출산과 관련된 스트레스, 양육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산후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우울함이 발생하는 빈도는 30~75%로 산후 우울증보다 높게 나타나며, 출산 후 3~5일 사이에 시작된다. 우울하고 불안정한 기분, 울고 싶은 마음, 의존감의 증가, 쉽게 눈물이 나는 것을 흔히 경험하고, 며칠에서 몇 주간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산후 우울증에 비해 증상이 약하고, 대부분 수일 내에 특별한 전문가의 치료 없이 호전된다.
우울증에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과 유사하나 발병 시기가 출산과 연관되어 있다. 우울한 기분, 슬픔, 불쾌한 감정 변화, 갑자기 눈물을 흘리거나 불안정하고 예민한 모습, 불안, 초조,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을 보이며, 아기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양육에 대해 심리적 부담감을 심하게 느끼는 등의 증상이 있으면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20~40대에 걸쳐 아기를 출산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산후 우울증을 경험할 수 있으며, 특히 초산인 경우 더 쉽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
출산 후에 우울을 느끼는 시기는 수유 기간과 겹치기 때문에 산모에게 항우울제 등을 사용하는 약물치료가 권장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울증상이나 불안 증상으로 인해 양육 및 일상생활에 문제가 일어나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한 경우에는 전문가와 상의하여 항우울제 등의 약물 치료, 상담 또는 정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가족들의 지지 역시 중요하므로 가족들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다. 대개는 외래 치료를 통해서 호전되지만, 타인이나 본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거나,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을 경우에는 입원 치료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출산 전 정신과 신체를 건강하게 관리하고, 출산에 대하여 미리 준비하여 출산과 양육에 대한 즐거운 마음을 갖는다. 산후 심리적 적응에 대한 교육을 받거나 책을 읽고, 출산 후 주변 가족들과의 관계 및 역할 변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출산에 대해 현실적인 기대를 하도록 한다. 그리고 출산과 양육은 여성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 배우자의 도움과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것임을 공감하고, 서로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산후 우울감과 산후 우울증은 증상의 심한 정도와 예후 및 치료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증상으로 힘들다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는 출산 후 산욕기에 금기하거나 권장하는 음식 및 일상생활에 대한 민간 요법이 많지만, 산후 우울증 때문에 특별히 가려 먹어야 할 음식은 없으며 고른 영양 섭취가 중요하다. 출산 후 과도한 다이어트는 기분의 안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적어도 출산 후 2~3개월 후에 서서히 운동을 병행하면서 체중 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