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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부터 해방을 위해

누가 보든 보지 않던 끝까지 쓰겠다.

by 다정한 지혜씨



소아우울증에서 몽유병, 공황장애 발작이 시작됐다.

어릴 적 마음의 병은 성인이 되어서도 우울증으로 날 한동안 어쩌면 지금도 괴롭혀 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장 쉬운 방법인 도망을 선택했던 것 같다. 내면을 바라보는 대신 몸을 혹사시키고 일부러 바쁜 일만을 골라서 하고 나를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강한 자극은 더 강한 자극으로만 치료가 된 다는 걸 그때는 몰랐으리라.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경험들이 내 안에 쌓여 자양분으로 날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첫 직장에서의 빌런, 생계형 알바와 내 청춘의 꽃 남대문, 처음으로 내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걸 알려준 자영업까지 난 무한한 존재로 푸른빛을 가지고 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을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일 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육아에만 매달렸다. 그것이 엄마의 자격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엄마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질은 따로 정해져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아이에게 더 집착했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키우며 미완성인 삶이 완성으로 간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기신청을 걸어놨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입소확정 전화였다. 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싫었다.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작고 어린 생명을 타인에게 맡긴다는 것을 너무나도 겁이 나는 일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남편에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겠다는 말을 했고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냥 보내. 자기도 자기 삶을 살아야지. 언제까지 애만 보고 있을 거야?"

내 삶? 내 삶이 있었던 가? 나는 누구지? 내 이름이 뭐더라? 나는 그제야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다잡고 나의 주체를 세우지 않으면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글쓰기 학원을 찾아보다가 내가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 없어 포기했고 좋아하는 책들에 대한 독후감을 소소히 블로그에 올리다가 그것마저 시들해 버려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만난 것이 브런치 스토리였다. 두 번의 작가 신청 끝에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이렇게 지금까지 글을 연재하고 있다. 해보지 않고 시작하지 않고 가보지 않은 길을 아무도 모른다. 나의 이야기가 아픈 과거가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고 지지를 받을 줄 누가 알았으리랴,


나는 글을 쓰면서 부천에서 진행하는 여러 글쓰기 수업에도 참여했다. 찾는 자에게 해답은 반드시 열린다. 글쓰기 수업에서는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는 동기와 기초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더불어 사람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같이 글을 쓰는 교우들은 내게 가끔 묻는다. "진짜 우울증 맞아요? 거짓말이죠?"라고,

나는 아주 그리고 많이 밝아졌다. 앞으로 나의 길에도 이렇게 밝은 날만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제 새로운 글을 연재하려고도 한다. 이번 이야기는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삶의 고통은 현실의 부정은 나를 글쓰기에 세계로 인도해 준다.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긴 글은 어쩌면 내 삶에 대한 고통에 관한 글이기도 했던 것 같다. 고통을 글로, 예술로 승화하는 방식도 나의 방식이다. 우울증에 삼켜지지 않으려 고군분투한 나의 삶은 아직 살아온 날보다 가야 할 길이 더 길다. 앞으로의 내 삶에 어떤 고난과 어떤 병들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난 그 모든 것들을 글로서 기록하고 마음으로 남길 것이다. 누가 보든 보지 않던 끝까지 쓰겠다던 나와의 약속을 앞으로도 나는 지켜내려 한다.





*해방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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