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북방 전쟁의 서막-2

스톡홀름 이야기 - 러시아인

by 황지현 박사

스웨덴의 안경을 끼고 보는 러시아.

4월 26일 12시. 스톡홀름 상공회의소가 주관한 "스웨덴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러시아의 비밀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안보 관련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 회의에 참석했다. 국영방송사인 SVT(스웨덴 텔레비전)에서 현장 녹화를 진행했을 정도로 주제의 시사성이 컸다. "러시아는 전제주의적인 야망을 갖고 있어 왔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 경제는 천연자원 외에는 경쟁력 있는 산업 분야가 없는데 코로나 및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주요 상품의 수출길이 막혔다. 그들은 민주주의, 국민의 삶의 선택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전혀 다른 가치를 신봉한다"라는 말로 시작된 여러 전문가들의 발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정보 및 기술전: 최근 러시아의 스웨덴에 대한 도발은 전쟁이나 물리적인 침공, 테러가 아닌 가짜 정보 확산 등 정보 및 기술전의 양상을 띤다.


2. 주요 지역 부동산 매입: 러시아는 민간인을 통해 스웨덴의 안보. 보안. 국방에 중요한 기관이나 군사 기지, 혹은 땅값이 비싼 국가들 등 주요 시설이 있는 곳 주변의 주택이나 토지를 사들이고 있다. 토지나 주택 소유주들을 보면 "러시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관련이 있을 수는 있으나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일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즉 객관적으로 검증된 사실은 아니다).


3. 금융 시스템 공격: 이 목적은 돈세탁이나 금융사기가 목적이 아니라 기술력을 동원해서 사회 주요 기능인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4. 기관과 기업 정보 해킹: 러시아의 AI 및 선도 기술 개발은 아주 뛰어나다. 뛰어난 AI, 기계 학습 기술을 통해 많은 정보를 취합해서 기계학습, 딥 러닝을 통해 기술력을 더 진보시키고 있다.


이에 사회자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러시아 같은 대국에게 스웨덴같이 지리상 규모뿐 아니라 정치. 경제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나라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5. 스웨덴의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이다: 스웨덴은 발트해와 유럽대륙에 있는 지리적 위치, 역사적 관계 (대 북방 전쟁 등)에 있어서 러시아에게 지정학상 중요하며, 게다가 러시아와 전혀 다른 사회적 가치를 신봉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세 명의 전문가는 모두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청중들에게 당장 전쟁이 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조성했다.


그런데 발표 내용 중 일부, 예를 들어 "천연자원 풍부한 것 외에는 경쟁력 있는 산업 분야가 없다"라는 주장은 신빙성이 부족하고 검증되지 않은 주장일 수도 있다.


많은 서구 국가가 운영에 중요하지만 생산, 비교적 부가가치가 적은 프로세스는 비용절감을 위해 발트 국가와 동유럽에 이전시킨 상태이다. 공장. 프로세스/서비스 센터 등을 통한 직접 투자 및 대출 규모도 적지 않다. 생산-프로세스에서 판매까지 밸류체인 전체를 자국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상태이다. 전쟁이 나서 동유럽과 발트 삼국, 우크라이나 등이 침공될 경우에는 경제적 타격도 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갈등 해결 방법으로 여러 수단 중 하필이면 전쟁을 선택한 것은 현명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럽 역시 이런 편향된 시각과 검증되지 않은 흑백논리를 전문가까지 동원해서 비전문가와 대중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서구와 러시아 모두 비이성적인 요소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아무리 러-우 전쟁으로 스웨덴 포함 주변 국가에 긴장이 고조된 상황이라도 이런 발표가 과연 객관적으로 검증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주장을 사실처럼 발표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에서 올바른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자본시장도, 거시경제도, 국가 안보 전략도 사실이나 실제 일어난 사건이 아닌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예측치, 선행적 요소, 과거 주요 사건에 대한 집단 트라우마,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다는 집단 공포, 상대에 대한 불신, 미래에 대한 우려 등 사실이 아닌, 비이성적인 요소들에 의해 사회와 개인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안보 역시 러시아가 유럽을 침공한 것도 아니고, 나토가 러시아를 침공한 것도 아닌데, 양 진영은 귀한 세금과 자원, 청년들의 젊음을 전쟁 준비에 낭비하고 있다. 진짜 가치 있고 재미있고 선한 일에 투자할 자원은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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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 언어 교수법 워크숍에서 러시아 원어민 선생을 만났다. 아들은 15년 전에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며느리도 몇 년 후 뒤따라 하늘나라에 갔다. 남은 손자는 첼랴빈스크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서 자랐고 드디어 18살이 돠서 올가을에 정보통신 학과에 입학한단다. 스웨덴에서 번 월급을 떼어서 매달 러시아에 사는 손자와 친척들에게 생활비를 보냈단다.


러-우 전쟁 후 스웨덴 등 많은 국가가 러시아로 송금과 대금결제를 막았고, 생활비를 몇 년 동안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주요 도시로 가던 직항도 끊겼다.


은퇴를 했고 현금 마련을 위해 살던 스톡홀름 소재 아파트를 팔고, 대신 지방 발트해에 가까운 관광지 섬에 값싼 작은 원 룸 아파트를 두 개 샀단다. 하나는 본인 거주용, 다른 하나는 임대용으로. 환히 웃으면서 도시는 관리비도 비싸잖아... 생활비도 되고 좋잖아.


끝나고 회의실을 나서는데 선생 옆에는 지팡이가 있다. 일어나 걷는 그녀는 계속 한쪽 다리를 절었다.


다리는 어떻게 된 거예요?


겨울만 되면 알프스에 온 가족이 스키 여행을 가서 럭셔리 휴가 기념 훈장처럼 다리에 스키 여행 부상 기념 깁스를 하고 일터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멀쩡히 다니는 은행 동료들이 드물지 않기에 스키 좀 타거나 모토패드를 좀 탔겠구나라고 별생각 없이 물었다.


그녀는 스톡홀름 근교 박스홀름에서 근무했는데 20여 년 전 우연히 교통사고가 나서 오른쪽 다리를 평생 쓸 수 없게 되었다. 지하철까지 가는 길을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으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내 아들이 15년 전에 죽었다오. 그리고 예카테린부르크에 묻었어. 예전에는 스톡홀름-모스크바에 직항이 있어서 한 번 갈아타면 우랄까지 갈 수 있었지. 지금은 세르비아에서 페테르부르크에 갈 거야. 일단 페테르부르크 에 가면 거기서 내 친구들이 우랄로 가는 러시아 국내선 항공권을 사줄 거야. 전쟁 후에는 여기서는 러시아 비행사의 항공권은 결제가 안 돼. 그래서 베오그라드에 가서 페테르부르크에 가고, 며칠 후에 예카테린부르크에 갈 거야. 오랜만에 친척들 생활비도 주고.. 여기서 은행 결제가 다 막혀서 돈을 더 이상 보낼 수 없게 되었잖아... 내 손자 알렉산드르는 참 공부를 잘한다오...


거기에는 한 아파트에 세 세대가 함께 사는 가족도 많아. 아이들도 크면 독립을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같은 공간에 다 같이 붙어 사니..... 싸움도 하겠지....."


러-우 전쟁 후 SWIFT에서도 러시아로의 결제를 막았고, 내가 근무하는 은행도 무슨 사회 정의 실현이라도 하는 양 러시아 지사를 허겁지겁 닫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의 삶에 하등 관계도 없는 문제로 정치 외교 갈등에 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망가져야 하는지. 국가들이, 아니 이를 대표하는 정치. 경제 엘리트들이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 때문에, 아니, 그들의 무지 때문에 왜 평민들의 삶이 방해받아야 하는지.


내가 아는 대다수의 슬라브 사람들이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낸다. 이런 사람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소량의 돈을 전쟁 자금 지원, 테러리스트 파이낸싱이라 몰아세운다면,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이는 무지를 떠나 폭력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를 쓴 푸시킨은 몇 백 년 전 쓴 또 다른 작품 "청동 기사"에서 대의 때문에 파괴되는 보통 사람의 지극히 평범한 행복과 삶이라는 주제를 제기했다. 그 후 21세기도 1/4이 지나고 있는 지금 같은 문제는 형태만 다를 뿐 여전히 미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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