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행형 Jan 26. 2024

모르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DM을 보내봤다.

유기견 입양 일기 5

유기견 입양 일기


  강형욱 반려견 훈련사가 나오는 KBS의 ‘개는 훌륭하다’, 설채현 수의사가 솔루션을 제시하는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많이 보게 됐다. 

  나는 아무래도 사람 보다 동물을 더 좋아한다. 사회생활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 치이며 살게 되는데, 퇴근하고 자기 전에 동물 나오는 영상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정화가 된다. 그래서 동물농장 같은 프로그램 요약 영상 같은 것들을 많이 봤고, 훈련사가 나와 솔루션을 주는 프로그램은 사실 많이 보진 않았다. 

  경기가 불황일 때 사람들은 심오하고 진지한 드라마 보다 희망을 주고 가볍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더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 이와 비슷하다. 일이 바쁠 때나 잘 안 맞는 상사를 만났을 때는 퇴근하고 녹초 또는 파김치가 되기 때문에,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보다는 마냥 뇌를 비우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그래서 ‘개는 훌륭하다’ 또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면, 주로 문제행동이 있어 교정이 필요한 개들이 나오고, 심지어 그 정도가 다소 심한 개들이 나오기 때문에 나에게는 추가적인 스트레스였다.       


  무디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부터는 오히려 그런 프로그램을 정주행 했다. 많이 보다 보니 각 훈련사들마다 다른 훈련 스타일이 보이기도 했다. A훈련사는 무조건 강아지가 싫어하는 행동 하지 않고, 강아지가 먼저 다가오도록 하는 훈련법을 고수했다. B훈련사도 강아지가 먼저 다가오도록 유도하는 것은 유사했으나, 어느 정도는 목줄 훈련을 가미해 강아지가 보호자를 인식하도록 하고 보호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적당한 리드줄 등을 활용한 훈련을 하도록 했다. C훈련사는 강아지가 겪은 과거 경험을 분석해 좀 더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곤 했는데, 강아지가 과거 뜬장에서 덮고 있던 이불을 사람이 뒤집어쓰고 그 이불 안으로 들어오게 해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호자로 인식하게 해주는 등의 신선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훈련사마다 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은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찍이부터 모견과 떨어지면 강아지가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어미로부터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되기도 하고, 경비견으로 목줄에 묶여 마당에 방치되거나, 식용견으로 키워져 뜬장에서만 생활해 보거나, 펫샵에서 출산만을 목적으로 번식장에서만 생활하면, 사람과 어떻게 교감해야 하는지 모를 수 있어요. 태생적으로 불안감이 높은 강아지로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사회화 시기에 안 좋은 경험을 하며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졌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산책도 안 해보고, 사람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개들은 지금 이대로 구석에 누워 있는 게 그나마 편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보호자로서 개한테 더 좋은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좋아요.”

  결국은 이러한 상처가 있는 개에게 사람과 어떻게 교감해야 하는지, 강아지가 알지 못하는 더 즐거운 삶이 있다는 것을 알도록 개에게 맞는 방법으로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검색창은 온통 무디와 관련된 검색어로 금방 도배됐다. ‘겁 많은 강아지’, ‘간식 유도 안 되는 강아지’, ‘불안감 높은 유기견 입양’, ‘강아지가 싫어하는 행동’, ‘겁 많은 강아지와 친해지기’, ‘사람 무서워하는 강아지 훈련’ 등으로 가득 찼고, 관련 영상들을 대부분 찾아봤다. 내가 안 본 영상이 이제 더 이상 검색해서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나중에는 오히려 이런저런 영상을 많이 보는 것이 나에게 독이 되지 않을까 해 줄이기는 했지만, 무디가 켄넬에서 나오지 않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초초해져서 그런 영상들을 많이 보긴 했다. 

  그중 추천해주고 싶은 영상 채널이 하나 있다. ‘시바견 미니’라는 유튜브 채널인데, 미니라는 시바누이 믹스견은 길에서 발견되어 동물보호소에서 3개월 동안 철장에 갇혀 지내다 안락사 리스트에 올라 동물 구조 센터에서 구조했다. 그 이후 일주일 만에 입양을 갔지만, 두 달 넘게 침대 밑에서만 지낸다는 이유로 파양 되었고, 동물 구조 센터로 다시 돌아가 지내다가 LA에 있는 한 가정에서 입양해 돌보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입양 Day1부터 Day180 정도까지의 기록이 꼼꼼하게 모두 되어 있다. 간식을 받아먹지 않기 때문에 간식 훈련이 전혀 되지 않는 강아지의 변화기가 세세하게 담겨 있기 때문에, 겁이 많은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면 공감할 내용들이 많다. 영상 60여 편이 있는데, 며칠 만에 모두 다 시청했다.      


  하도 영상을 많이 보다 보니, 안 본 영상이 없을 정도가 되었는데 무디와 정말 비슷하다고 느낀 강아지가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다. 사람이 다가가는 것을 무서워해 도망가기 일쑤이고, 긴장도가 높아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놀라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8개월이 넘도록 산책도 나가지 못해 발톱은 길어졌으며, 보호자에게도 다가가지 않고 있었다. 그 강아지의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무디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한참 동안 남편과 함께 고민했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그 강아지의 견주에게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보냈다. 나는 모르는 제 3자에게 DM을 보내본 적이 없다. 무디 덕에 처음으로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게 DM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뜬장 구조견 무디라는 강아지를 임시보호 하다가 입양했는데 겁이 많아 영상을 찾아보다가 D라는 강아지를 알게 됐어요. 지금은 D가 보호자님 사랑과 노력에 산책도 하는 모습 보니 정말 기특하더라고요. 무디의 성향이나 상황이 D와 많이 비슷해서 방송에 나온 솔루션을 보고 따라서 시도해보려고도 했네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답변 어려우셔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솔직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목줄 훈련 한 가지를 꾸준히 해서 개선이 되었는지, 숨숨집을 만들어주는 것이 오히려 회피성을 높이는 것은 아닌지’ 몇 가지 질문을 남겼는데 답변이 없었다. ‘그래,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민폐일 수 있어. 방송에 나오고 나같이 DM을 보내는 사람이 많았을 수도 있고,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답변을 해주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고 그 이후에는 별생각 없이 넘겼다. 그런데 2주쯤 지났을까, 답변이 왔다. 

  “죄송해요, 방금에서야 DM을 봤어요. 강아지 D도 간식이나 먹을 것에 전혀 관심이 없고, 조금만 겁먹으면 구석진 곳이나 침대, 소파 밑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무디와 강아지 D는 정말 비슷했다. 그러더니 D의 견주는 실제 몇 개월간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의 질문에 친절하게 길고 긴 답변을 남겨주었다. 모든 강아지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고, 정답도 아니기 때문에 공유하긴 조심스럽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처음에는 목줄을 억지로라도 채워 훈련을 시작했고, 똥과 오줌을 지리기도 했지만 무작정 데리고 산책을 3개월 동안 나갔더니 조금씩 밝아졌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렇게 시바견 미니도, 강아지 D도, 그들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기록해 SNS에 공유하고 근황을 지속적으로 남겨주는 게 고맙다. 이런저런 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이런 개에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보여준다. 나도 그래서 기록을 열심히 남기기로 했다. 무디와 성향이 비슷한 강아지를 입양할 미래의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본다.

  많은 사람들이 ‘개’를 떠올리면, 마냥 사람 보면 꼬리 흔들고 사람 좋아 애교 부리고, 귀엽고 예쁜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지만 개도 개 나름이다. 기본적으로 다른 동물에 비해 비교적 사람과 교감을 잘하고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동물인 것은 맞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개도 성향이 있고, 저마다 특성이 다르다. 사람도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개도 마찬가지다. 개도 개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개가 있고, 개 친구를 만드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개도 있다. 사람을 좋아하는 개가 있고, 사람이 만지거나 껴안거나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개도 있다. 개를 일관된 이미지만 염두하고 바라보기엔, 그들은 매우 다양하다. 80억 인구 중에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듯, 개도 똑같은 개는 없다. 


  개를 키우기로 결심했다면, 한 마리 개마다의 서로 다른 특성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 나의 가족이 될 배우자를 여러 대화를 통해 알아가듯, 개도 그렇다. 개와 교감하고 대화하며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디는 무슨 견종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