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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Jul 05. 2021

바다수영과 서핑, 그랑 블루

첫 날은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해변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 일은 바로 바다 수영!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폭우를 쏟을 것 같은 모습이었기에 주말에 해변을 방문한 사람들은 모두 안전하게 모래사장 위만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요즘 물 관련 활동에 한창 빠진 나와 언니는 서울에서 주 5일 수영으로 단련된 체력과 담력을 확인하고자 꼭 바다에서 수영을 해보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성난 하늘과 거무튀튀한 물을 보니 도저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벅지까지 몸을 담그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은 엄청난 용기를 요했다. 하지만 시도도 해보지 않고 돌아갈 순 없었다. 내가 서울을 떠나 바다로 온 이유가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서인데 이 정도에 굴복할 수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객기로 바다에 풍덩 뛰어 들어 자유형을 시도했다. 언니의 수영 선생님이 알려준 바다 영법 따윈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팔다리를 휘휘 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구경만 하고 있던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바다로 뛰어든 것이다. 연인들은 맞춰 입은 츄리닝을 입고 바로 바다로 들어 갔고 돗자리를 펴놓고 관망하던 사람들도 물 속으로 하나 둘 들어왔다. 그렇게 텅텅 빈 채 외로웠던 바다는 대 여섯 명 정도의 사람들로 그 날의 심심함을 달랬다.

소금물이 코로, 목으로 귀로 들어오고 차가운 파도와 빗방울이 얼굴을 쓸었다. 기분 나쁜 짭짤함과 찝찝함, 추위로 인한 피로가 온 몸을 덮쳤는데 왜 기분이 좋았을까. 바다수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허우적거림이 다였지만 타지에 도착한 첫날 한 활동치고는 매우 성공적이며 기억에 남을 일이다.


바닷가의 주말

원래 프리랜서의 삶에서 주말과 평일의 구분이란 없다. 하지만 바닷가에서의 토, 일 이틀간은 평일간 열심히 일하고 원없이 쉬는 직장인들과 비슷한 주말을 보냈다고 고백해야 겠다. 먹는 것에 쓰는 돈, 흘러가는 시간 아까워하지 않고 마음껏 먹고 쉬었다.

하필 금요일에 도착한 우리는 주말엔 서울보다 넘쳐 흐르는 인파를 만나야했다. 카페 몇 군데에 들어갔다 포기하고 주차할 곳 찾다 포기하고 주말에는 밖에 나오지 않기로 다짐했다. 주말엔 숙소에서 일하고 평일에 나와서 일하기로 했다. 이것 또한 프리랜서가 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특권이다. 남들 일할 때 쉴 수 있고 남들 쉴 때 일할 수 있다는 것.

저녁엔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서 파도를 보며 페리카나 치킨과 맥주를 마셨고 밤엔 숙소에서 영화 <그랑 블루>를 다시 봤다. 바다에서 보는 그랑 블루는 위험하다. 엔조와 자크를 자꾸만 이해하게 만든다.


바닷가의 월요일

월요일이 오고 '오늘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한 주를 새롭게 시작했다. 첫 번째 스케쥴은 벼르고 벼르던 서핑. 이미 매주 월, 수 3주 간 보드 렌탈을 예약해 놓고 강릉에서 양양까지 30분을 달려 기사문 해변으로 갔다. 입문 수업 한 번 밖에 들어보지 않았지만 서핑 선생님께 소질 있다는 칭찬도 들었고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주 5회 수영으로 수력도 다져놓은 터라 자신만만했다. 슈트 빌리는 돈을 아끼기 위해 래쉬가드와 워터 레깅스를 입고 바다로 뛰어 들었다.

그런데... 이런 파도는 처음 보는 파도였다. 분명 선생님이 잘한다고, 서핑에 적합한 체형에 유연성에 체력도 있다고 했는데... 보드에서 일어나는 자세인 테이크오프는 한 번도 할 수 없었고 패들링만 주구장창 하다가 파도가 덮치면 소리 한 번 꽥 지르고 보드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래쉬가드는 체온을 유지해주기에는 너무도 얇았다. 30분도 안 되어 이가 딱딱 부딪히는 상태로 첫 서핑을 끝냈다. 절대 파도를 만만하게 보지 말아야겠다는 걸 배웠다. 바닷가 살이도 절대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햇살 때문에 화면은 잘 보이지 않아도 이런 환경이라면 그 정도 불편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이 카페 사장님도 서울에서 회사생활하다 다 접고 내려왔다던데..




파도를 보며 치맥을 할 수 있다는 것, 메밀밭에 둘러싸여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서울에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할 이 두 가지가 주는 기쁨이 얼마나 오래 갈까. 이 모든 것들도 익숙해지고 나면 동호대교 아래 주홍빛으로 흐르는 한강을 처음 봤을 때의 감흥처럼 점차 흐릿해지고 희미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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