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뚝이샘 Nov 09. 2020

빼빼로데이의 기적

모두가 행복한 빼빼로데이를 만든 건 내가 아니라 아이들이었다


내일은 빼빼로데이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끼리 모여서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점점 많은 아이들이 뭉치기에 내가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야? 선생님한테도 알려줘.”


“아, 내일이 빼빼로데이라서요, 누구한테 줄 건지 이야기 했어요.”


내가 빼빼로데이가 없어지길 바라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누구는 많이 받고 누구는 못 받고, 그래서 어떤 아이는 자랑하고 어떤 아이는 소외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차별적인 선물은 폭력이라고 본다. 고민하다 하교 전에 아이들에게 말했다.


“내일 빼빼로를 친구들에게 줄 생각이라면, 모두에게 주길 바란다. 차별적인 선물은 특정한 사람을 기쁘게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받지 못한 사람에겐 폭력이 될 수 있어. 모두에게 사주기에는 돈이 아깝다면, 아예 안했으면 해.”


아이들은 내 이야길 귀 기울여 들었다. 하지만 이내 6학년스러운 대답을 내 놓았다.


“그럼 쌤 없는데서 몰래 주는 건 되는 거죠?”

“하굣길에 주면 되겠네요.”


그리고 나는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 알아들었을 것이라 믿는다며 마무리를 지었다.


우리 반은 총 31명이다. 나까지 32명. 32개의 빼빼로를 사는 데는 돈도 많이 들고, 실제로 아이들이 사올 거라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다 사오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한 말이다. 뒤에서 안보이게 주는 건 눈감아줘도 특정 아이에게는 특별함을 누구에게는 소외감을 가져다주는 차별적인 선물을 주고받는 건 막아주고 싶다.




그런데 세상에, 아침에 출근해보니 아이들은 정말 빼빼를 32개를 준비해 와서 책상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미 책상에는 빼빼로 몇 개가 놓여있었고 몇몇 아이들은 돌아다니며 친구들의 책상 위에 뺴빼로를 올려놓는 걸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저만 사올 줄 알았는데 사온 애들 많아요!”


“빼빼로 사느라 용돈 3만원 넘게 썼어요. 근데 너무 좋아요.”


“선생님, 우리가 진짜 사올 줄 몰랐죠? 그래서 더 감동한 거죠?”



“너희 마음이 너무 예쁘다. 고맙네. 큰돈 써서 어떻게 해. 선생님이 두고두고 갚을게. 졸업하면 찾아와~”


아이들은 모두에게 따뜻한 선물을 자율적으로, 대가없이 주었다. 모두가 행복한 빼빼로데이를 만든 건 내가 아니라아이들이었다.







자율교실의 열매는 개별적 학생의 자율성만이 아니다. 자율과 함께 아이들의 창의성, 열정, 내면의 선함도 함께 깨어나고 자라난다. 학생들은 자기 일만을 스스로 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모두를 위한 일, 더불어 행복한 교실을 만들어간다.


본인의 자아, 개인의 고유성을 키우지 못한 상태에서 남과 잘 살기 위한 것에만 집중하는 삶은 만족스럽지 않다. 시키는 대로, 남들이 원하는 대로 따르는 것은 기쁘지 않다. 자신의 개성과 창의성, 상상력을 충분히 드러내며 자기답게 성장할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교실의 주인은 교사 그리고 학생들이다. 교실의 기본 값이 교실 밖의 타인이 아닌 교사와 아이들이 될 때, 긴장감이 사라지고, 교실은 아이들의 웃음과 행복으로 채워진다. 자율교실 안에서, 아이들은 인정받기 위해 애쓰지 않고, 미움받을까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알고, 남과 잘 지내는 법도 터득해 나간다. 모두가 행복한 매일이야 말로 자율 교실의 진짜 열매다.



왜 자율교실인가? 나는 왜 아이들의 자율성을 키우고자 했나?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교사와는 1년이지만, 자신과는 평생을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되는 법과 자기로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과 대화하며 자기다움을 발견할 때 아이는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능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멀어진다. 그러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인 경험은 아이의 긴 인생에 오래도록 보탬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자율의 힘이다. 원하는 것을 이해해 주는 교실, 실수해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되는 교실,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무한히 주는 교실 속에서 아이들의 자율성은 깨어나 자라날 것이다.








4년전 6학년 담임을 하며 빼빼로데이에 겪은 사례로


내년초 출간될 책 <초등 자율의 힘>의 에필로그이기도 합니다.


내년에 책으로 만나실 수 있어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