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반성문 : 팀장에서 두 번 잘리고 나서야 깨달은 것들』 EP.10
90년대에 태어난, 7년 차 직장인.
안정적인 회사에 근무하다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첫째, 시키는 일만 잘하는 내가 불안했다. 스스로 기획해서 성과를 내고 싶었다.
둘째, 유동성이 넘치는 시기, 로켓에 올라탄 이들처럼 나도 유니콘 기업의 성공 방정식을 알고 싶었다.
처음에는 물경력 때문에 면접에서 모두 떨어졌다.
스타트업에 가기 위해 각종 강의, 컨설팅, 프리랜서 업무를 찾아
도움이 될 만한 이력을 쌓았고 우여곡절 끝에 첫 스타트업에 합격했다.
온실 속 화초인 나에게 기회를 준 회사가 정말 고마웠다.
앞으로의 계획 역시 단순했다.
이제 회사는 당분간 나의 0순위다. 몇 년 간은 파묻혀 살겠다.
시장에 진짜 '성과'를 내고 '스톡옵션'의 가치를 높여야겠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불가능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예측불허,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때는 몰랐다.
몇 년 후, 계산에 없던 '리더십'이라는 단어가 자꾸 내 인생을 들쑤셔 놓을 거라는 것을.
스타트업 입성 후 나의 '지구'는 회사라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원래 워커홀릭 성향이 있었지만 업무 강도는 배로 높아졌다. 평일과 주말, 밤과 새벽을 가리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도, 일어난 후에도 메신저부터 확인했다. 가족도, 친구도 항상 후순위였다.
회사는 내 일처럼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 한 번쯤 기회를 준다.
나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팀장이 되었다.
"리더십"
언젠가는 부딪힐 과제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마주할 줄은 몰랐다.
기분이 뿌듯한 한편, 두렵기도 했으나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스타트업은 나에게 인생의 벼락치기를 하는 곳과 같았다.
계획했던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니 잘 해내고 싶었다.
폭풍 같은 반년이 지났고, 나는 면팀장이 되었다.
팀의 성과는 좋았지만 리텐션에 문제가 있었다.
스타트업 조직문화를 배우지 못해 미숙했던 점도 많았다.
보수적인 조직에서 신입생활을 했던 나에게 당연한 것도, 당연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름 같은 'MZ세대'라고 이해하고 양보했음에도 '권위'로 느껴진 듯하다.
'아직 팀장 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신 때문에 우리 팀원들이 회사를 나가면 어떡하죠?
다시 실무자로 돌아가서 열심히 일해주세요.'
팀장 보직 해임. 팀장에서 다시 팀원이 되어버린 셈이다.
몇 년 전 그린 스토리보드 어디에도 없는 장면이었다.
전국 1등은 아니지만, 책임감이 강해 어느 직장을 가든 중간 이상은 했다.
일을 잘한다는 칭찬도 자주 받았다.
'너는 일을 못하는 사람이야.'
직장에서 처음 듣는 평가이자,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 탄탄했던 삶의 대로에 균열이 일어났다.
'나는 태생적으로 팀장 할 감이 아닌가?'
'내가 앞으로 어딜 가든 승진을 못하면 어쩌지?'
'만약 타고나게 팀장 자질이 없다면,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지? 자영업을 준비해야 하나?'
"이 직무가 나랑 맞나? 이 직무로 관리자가 되는 것 자체가 나랑 안 맞는 거 아닌가?"
여느 30대가 겪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진득한 공포로 변해갔다.
면팀장이 된 이후에도 나는 업무시간을 줄이지 않았다.
회사가 원하는 대로, 다시 팀원으로서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존경해 온 멘토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았다.
재무제표, 미래 사업성, 대표의 가치관 모두 따져봤을 때 이곳 역시 성공 확률이 높아 보였다.
리더십에 대한 트라우마, 직무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면서 성공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겼다.
회피의 선택일 수도 있다. 당시 나는 '리더십'에 지나치게 꽂혀있었다.
기껏 쌓은 스톡옵션을 포기하고 이직을 결정했다.
하지만 몇 년 후, 야속하게도 같은 사고가 반복 재생 된다.
새로운 회사는 열심히 하는 나에게
똑같이 조직장을 맡겼고, 채용을 시킨 후, 보직 해임 시켰다.
이번에는 지난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노력을 많이 했다.
첫 팀장을 했을 때보다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기존 팀원들의 신뢰를 받아 조직장이 된 것이고, 예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막을 수 없는 또 다른 결함들이 생겼다.
나는 그렇게 두 번 연속 경질을 맞았다.
주변 지인들은 위로해 줬다.
'요즘 같은 세상에 팀장 해임은 흔하다'
'요즘 애들이 퇴사를 밥먹듯이 하는데 당연히 어렵다'
'어떻게 성과도 배로 내면서 팀 분위기도 좋게 하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 역할을 잘하는 이들도 많다.
아직 내가 리더십 역량이 부족한 것이다.
앞으로 다시 팀장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사람 마음은 노력한다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아무런 노력을 안 했는데 나를 믿어주는 팀원이 있는가 하면,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불만을 들어줘도 주야장천 퇴사를 달고 사는 팀원도 있었다.
좋은 관계를 쌓은 팀원도, 바빠서 점심을 먹지 못하니 관계가 데면데면 해졌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선배에게 물었다.
3명을 관리하는 팀장으로 시작해서 몇십 명, 몇백 명의 조직의 리더로 성장한 분이었다.
"팀장은 도대체 언제부터 해야 잘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걸까요?"
"일은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데 팀은 아니에요. 계속 해소되지 않은 염증을 안고 사는 기분이에요."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진학하고,
회사는 대학교를 졸업하면 입사한다.
하지만 팀장은 언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도대체 무엇을 갖추어야 제대로 팀장을 잘할 수 있는 걸까?
선배는 웃으면서 말했다.
"세상에 완벽하게 준비된 리더는 없어요. 리더가 되면, 불확실성의 연속입니다.
그 염증이 계속될 거예요. 사람 마음은 계속 변하니까요."